행복이라는 삶의 미끼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자궁을 벗어난 생명체는 엉덩이를 얻어맞자, 현실을 자각하고 운다.

'울음'은 '고통'의 '상징'이다. 너무 기뻐 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개의 울음은 고통과 두려움 앞에 무너진 감정의 표현이다. 아무것도 모른 존재가 운다는 건, 그러니까 기분이 싸한... 겪어보지 않아도 알겠는 인생의 예고편에 대한 굴복과 체념이 섞인 결과다.


일찍이 현인(賢人)들은 삶의 궤적을 관통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했고, 붓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은 고통이다'라고 아예 대놓고 삶을 정의했다. 나의 분신이자 가장 생각이 잘 통하는 알베르 카뮈는 '인생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며,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굴레다'라고 명징하게 우리네 삶을 해석했다.


누군가,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 말한다.

나는 이게 정말로, 너무나도 오만한 말이라 규정한다. 삶을 긍정하자는 의도는 알겠으나, 행복이라는 감정은 대단히 순간적이며, 때론 아무리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그러하지 못한 때가 있다. 이 말을 오만하게 보는 나의 오만함은, 그렇다면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바카라을 떠안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못함은 누구의 탓도, 누구의 잘못도, 선택의 문제도 아니다. 왜?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이니까. 고통스럽고 행복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삶의 섭리인 것이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조금 말을 바꾸면, 가능은 하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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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 말했지만, 어찌 되었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통을 없애야 하고, 그것을 없애려면 고통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의미를 찾는 인간'과 '의미가 없는 세상' 사이의 절망적인 불일치는 부조리를 자아낸다. 부조리는 다시, 괴로움과 고통을 양산해 내는데, 그 간극이라는 고통을 '반항'이라는 의지로 치열하게 살아가면 괴로움은 선택이 영역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견과류는 몸에 좋다.

그런데 먹다 보면 쓰다. 그러다 간혹 얻어걸리는 건포도가 달달한 맛을 선사한다. 도파민이 올라간다. 순간의 달달한 맛이, 다시 쓰디쓴 다른 견과류를 먹도록 해주는 인내가 된다. 삶에도 달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건, 찰나의 기분이자 감정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삶의 목적을 그리고 목표를 '행복'에 두지 않는다. 어차피 그것은 순간적으로 지나갈 것이고, 그걸 더 오래 유지하려거나 잡아 가두려 할 때 오히려 더 불행해진다는 걸 삶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고통은 행복을 붙잡으려 할 때 배가 된다.

행복은 삶의 미끼다. 미끼를 제대로 불어버리면, 우리는 낚싯줄에 꿰여 끌려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 미끼는 잠시 맛만 보면 된다. 미끼를 덥석 물거나, 또 다른 미끼에 중독된다면 우리는 삶이란 드넓은 바다를 유영할 수 없다.


미끼는 미끼대로.

달콤함은 달콤함 대로.

행복은 행복함 대로.


그저 놓아주는 게 맞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러해야 한다.


고통을 받아들일 줄 알면,

붙잡고 싶은 것들을 보내어줄 줄 알면,

괴로움의 정도를 비로소 제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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