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다 마음 에세이>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창희(이민기 분)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구 하나 걸리면 사고를 칠 것 같았다. 아니, 사고를 치려 벼르고 있었다. ATM기 앞에서 창희의 차례가 되었을 때, 갑자기 뒷사람이 버스 시간 때문에 먼저 좀 쓰겠다고 양보를 요구해 왔다. 분노의 게이지가 사고를 치라고 마음에서 요동했지만, 현실의 창희는 꾹 참고 양보해 준다.
그리곤, 급하게 떠난 그 사람의 거래 화면을 우연히 마주한다.
잔액부족으로 5만 원을 인출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난 것이다. 창희가 느낀 건 묘한 안도감과 위안이었다. 양보하길 잘했다고 창희는 생각했고, 자신이 남의 불행으로 위안 삼는 그런 형편없는 인간이긴 하지만, 이번에 자신이 느낀 건 그게 아니라는 것. 5만 원도 없는데 버스까지 놓쳤으면 얼마나 비참했을까...라는 일종의 타인에 대한 배려.
비교가 일상인 시대이다 보니, 남의 불행이 위안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내가 잘 나가지 못하면, 남도 그러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세상은 나만 빼고 잘 먹고 잘 산다. '비교'가 주는 '함정'이다. 함정은 깊고 어둡다. 그러하므로 시야는 좁아진다. 비교를 하면 그 누구도 이길 수가 없다. 비교는 '일대 일'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一) 대 다(多)'의 싸움, 그 결과는 백전백패다.
남 안되길 바라는 순간, 시간은 내 편이 아니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남 안 되는 것보다 내가 잘 되는 게 더 빠르다. 내가 더 잘 되도록 노력하는 게 더 남는 장사다. A의 성공과 실패, A에 대한 실패를 위안으로 삼아도 B의 성공에 우리는 시기를 하고, C의 고통에서 위안을 받아 보려 하지만, A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또는, 누군가의 섭리로 인해 타인에게 일어난 불행이, 불행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네 삶에서도 나쁜 일이라 생각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더 나쁜 쪽으로 삶이 흘러갈 때도 있다.
좋은 지.
나쁜 지.
누가 알겠는가.
고로, '위안'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타인에게서 찾는 위안은 위안이 아니며, 위안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그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
진정한 불행은 어쩌면,
위안을 타인에게서 찾으려는 그 마음 아닐까.
그렇다면 행복은?
이미 답은 나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