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러'라는 말을 안 쓸 수 있을까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아, 배불러"


오늘도 말해버렸다.

그 말을. 아마도 배부르다는 말은 '아이고' 다음에 이어,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소위 말해 X세대다.

X세대는 문화와 시대의 풍요를 거친 세대라 알려져 있지만, 90년대 이전 80년대는 분명 배고픔이 있던 시대였다. 그 시절의 화장실은 모두 재래식이었으며, 쌀 한 가마니를 가지고 있는 집은 드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쌀 1되(1.8L)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면 그게 그렇게 싫었다. 한 가마니는 아니더라도, 쌀을 1 섬(180L)이나 1말(18L) 조차 사지 못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대적) 가난은 도처에 널려 있어, 그 상처가 그리 깊진 않았다.

그러니까, 모두가 배고픈 시대였다. 너도 나도 가난했지만 정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분명, 쌀독에 쌀이 떨어지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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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을 겪은 분들의 배고픔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나는 그래서 '배고픔'의 의미를 조금은 안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 사이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운 친구를 몇몇 보기도 했고, 소시지가 하나라도 있는 반찬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드고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맛있는 반찬을 싸 오는 아주 특별한 날에는, 친구들에게 빼앗길까 그 반찬을 밥 밑에 까는 꾀를 부렸던 기억도 난다.


지금으로선, 그때가 거짓말 같다.

그 시절이, 그 시대가 상상 속 타인의 이야기 같다. 지금은 먹는 게 넘쳐나는 시대이고, 심지어는 쌀 소비가 최저점을 찍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니까. 지난날이 거짓말인지, 지금이 거짓말인지... 여하튼 혼란스러운 가운데 나는 오늘도 '배불러'를 매끼마다 연신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풍요 속 빈곤'이란 말이 있는데, 나는 지금이 딱 그러한 때라고 느낀다.

맛있는 음식은 넘쳐나고, 자극적인 맛은 사람들의 도파민을 끌어올리는데... 정작 마음은 공허하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없는 상품도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걸 다 가질 수 있는 시대이지만, 정작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냐, 배부른 돼지냐... 에 대한 답은 시대와 함께 변화되었다.

이미 나는 배부른 돼지가 되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돌아갈 자신은 없다. 가장 이상적인 건, 배부른 소크라테스일 테니, 지금의 시대엔 그걸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더 깊은 사유는 배고픔에서 올 가능성이 높다는 걸 잘 안다.

그렇다면 우리네 마음은 이미 많이 배고파 있는 게 아닐까. 몸이 배부르다고, 정신과 마음이 배부르다는 착각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배불러'라는 말을 좀 줄여보고자 한다.

조금 덜 먹고, 그래서 조금은 덜 게을러지고. 마음의 배고픔을 알아차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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