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하루'라는 개념은 꽤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 하루는 길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가 짧다는 게 그 방증이다. 아니, 나에게도 어느 날의 하루는 길고, 또 다른 하루는 그렇지 않다. 하루는 '시간'과 '기간'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절대적이지 않은 대상을 마주하는 건 허무하고 위태롭다. 상대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우리네 삶은 요동하기 때문이다.


어느 공중 화장실에서, 벽에 붙어 있는 하루살이를 봤다.

그 곤충의 이름이 왜 하루살이인지는 나는 잘 모른다. 아마도 어른들이 말하던 것을 그대로 답습한 어린 시절의 습관이 아닐까. 그것에 대해 궁금했다. 학명으론 '하루살이목'이며, 'Ephemeroptera'라는 그리스어는 '잠시 사는 날개'라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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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목은 물속에서 유충으로 1년 이상을 산다.

강바닥 돌 틈에서 유기물을 먹으며 느리게 성장한다. 이 기간 동안 탈피만 수십 번 반복한다. 그러다 성충이 되면 우화(羽化)한다. 이때 운명이 갈린다. 어느 성충은 몇 시간에서 기껏해야 며칠을 산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하루살이목은 1~3일 정도 생존한다. 성충이 된 하루살이는 입과 소화 기관이 퇴화되어 있다. 먹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의 존재 이유는 뭘까. 오직 짝짓기와 산란이다.


성인이 되어, 먹고살기 위해 대부분의 꿈과 욕구를 거세해야 하는 우리네 삶이 겹쳐 오른다.


우리는 성충의 찰나만 보고 그들의 수명을 하루라고 규정한다.

물속에서 보낸 긴 유년기를 감안하지 않는다.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버릇은 우리 삶에도 빈번하다. '빛나는 순간(젊음, 성공, 사랑)'만을 수명에 속한 것들이라 생각하고 있음을 하루살이의 날개를 보며 깨닫는다.


나의 하루는 어떤 시간이고, 어떤 기간일까.

눈 뜨고, 눈 감는 것이 하루라는 정의라면.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늦은 밤 감은 눈을, 내일 아침에도 뜰 수 있을까. 눈을 떴는데, 그게 나라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하루'라는 개념은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하루하루 매일을 속고 있는지 모른다. 기억에 의존하여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생각'이 아니라 '착각'이라면. 누군가 주입한 '기억'이라면.


절대적인 것을 맹신할 이유도.

상대적인 것에 휘둘릴 이유도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살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 하루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 있도록.


우주적인 관점으로, 우리네 삶은 하루살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시 사는 육체...', 뭐,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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