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직업 특성상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이젠 다른 나라의 생경함은 낯설지 않은 것이 된 지 오래다.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당도했을 땐, 나는 그곳의 흙과 바람과 나무가 다를 줄 알았다. 그것들이 다르지 않고,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란 걸 깨달은 건 전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서다.
그럼에도 때론 이국(異國)을 느낄 때가 있다.
길거리 신호등을 만날 때다. 빨간 불엔 건너지 말고, 주황 불엔 기다리고, 초록 불에 이르러 길을 건넌다는 서사(敍事)는 동일하지만 신호등의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어떤 곳은 가로로, 어떤 곳은 세로로 되어 있고 또 어떤 건 빛 가리개가 있는 경우도 없는 것들도 있다. 보행자 도로 쪽에 직립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곳으로부터 도로까지 반 아치 형태로 쭉 뻗어나간 것들도 있다. 유럽에 주재원으로 있을 땐 자전거 신호등이 있었고,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엔 차가 다가가면 바닥 압력을 센싱 하여 신호가 바뀌는 신박한 신호등도 보았다.
신호는 대개 '빛'으로 소통한다.
신호등의 수신호는 발광(發光)인 것이다. 신호는 누구에게나 잘 보여야 하며, 시인성이 좋아야 한다. 보지 못한다면 신호등의 존재가치는 소멸한다. 그래서 신호등은 온 힘을 다해 발광한다. 누구 하나라도 그걸 놓칠까, 정말로 온 전력을 다해.
긴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오니, 신호등의 모양은 그대로인데 두 가지가 바뀌어 있었다.
신호가 다 되어갈 때 몇 초가 남았는지 알려주는 것과 바닥에서 번쩍이는 신호가 그것들이다. 신호가 바뀌는 시간을 알려 주는 건 익히 봤던 것이지만, 바닥에서 나오는 초록불을 보고 나는 외국인처럼 그것을 신기해했다. 휴대폰을 보는 시선까지 고려한 한국의 정서가 과하고도 배려 깊다.
신호등은 그렇게 공중에서, 바닥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해낸다.
쉬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잘 해내는 모습이, 때로 나에겐 삶의 귀감이 된다.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숙명을 행하는 소명에 가득 찬 그 모습을 나는 때로 닮고 싶다. 나의 숙명은 무엇이고 또한 소명은 어떠한 것일까. 스스로 발광해야 하는 나의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보내는 신호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까.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 빨간 불에 서고, 초록불에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둘의 신호는 반대다. 때로 도로의 빨간 불이 켜지는 걸 보고, 보행자의 초록불을 예측할 때가 있다. 같은 사람인데 신호가 다르다는 것이, 우리네 삶의 역설을 시사한다. 위치의 역설이 만들어 내는 오해와 다툼은 상상이상이다. 서로에겐 상식이라는 것이, 부딪치면 갈등이 되는 것이다. 서로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가늠하는 것은 요상한 세상을 영리하게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숙제다.
신호등은 마음속에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마음의 보내는 발광을 잘 살펴야 한다. 신호등의 색과 마음의 색은 대개 일치한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그러하지 않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지만 신호등은 신호를 발광한다. 신호엔 메시지가 있다. 메시지를 해석하는 건 공통된 지식이자 정서지만, 내 마음속 신호는 스스로 배워 나가야 하는 일종의 암호다.
마음속에 있는 갖가지 신호등의 설명법을 잘 살펴봐야겠다.
때에 따라 어떤 색은 그 이상의 것들을 내게 말해줄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