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처음 에스프레소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잔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있어 보이는 이름에 비해 그렇지 않은 크기가 나를 당황케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얼굴을 찡그린 건, 그 맛을 보고 나서다. 이렇게 쓰디쓴 걸 왜 마시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주를 싫어하는 내 입맛에, 술을 달고 사는 친구가 너는 아직 인생의 쓴 맛을 모른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소주보다 더 쓴 에스프레소를 맛보며, 나는 에스프레소가 인생보다 더 쓰다고 생각했다.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마시는 법은 이탈리에서 배웠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직업의 슬픔이자 기쁨이기도 했다. 곳곳의 문화를 바라보고 경험하는 시간은 일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무엇이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서서 마셨다. 혹자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전에 물로 입을 한 번 정화하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길거리 서서 마시는 어느 카페들은, 작은 물잔을 에스프레소와 함께 제공하기도 한다.
젓는 건 한 번, 세 모금 안에 그리고 설탕은 신중하게. 이탈리아인임에도 에스프레소는 너무 쓰다며 설탕을 넣어 마시는 한 동료는, 설탕을 넣되 젓지 않으면 위배되지 않는 마음으로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다고 귀띔해 줬다. 하얗고 고운 설탕보다 입자가 큰 흑설탕을 넣는 게 더 좋다는 걸 알아낸 건 시간이 얼마 흐르고 난 뒤다. 난 지금도 에스프레소를 마주하게 되면 입자가 큰 흑설탕을 요청한다. 설탕을 넣고, 그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세 모금을 마시되 설탕이 보이면 그즈음에서 마시는 걸 끝낸다.
'Espresso'는 영어의 'Express'와 같고, 이는 '빠르다'와 '짜내다(Pressed out)'라는 뜻을 함께 내포한다.
에스프레소의 기원이 19세기말 산업혁명 시대 특유의 '속도와 효율성'에 기인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마디로 '빨리빨리' 문화가 만들어 낸, 속도와 고압의 산물이 에스프레소인 것이다. 고단한 사람들은 앉을 새도 없이, Bar에서 서서 빠르게 커피를 수혈하고 일상으로 복귀해야 했다.
대기압의 9배에 달하는 9 Bar의 고압과 95도의 뜨거운 물이 분쇄된 커피 가루를 통과하면 크레마가(Crema)가 생긴다. 고압 추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갈색의 크림층인 이것은 향이 날아가는 걸 막아주고, 동시에 부드럽고 진한 풍미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득, 고단한 일상에서... 먹고사니즘이라는 무게를 감당하는 나는 무엇을 쥐어짜고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에스프레소를 매일매일 추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맛은 보지 않아도 알 것이다. 쓴 맛은 불쾌하지만 중독성 있다. 마시는 순간 얼굴을 찡그려지지만, 그걸 다시 찾는 건 우리네의 연약함과 계속되어야 하는 삶이 만들어낸 역설이다.
쓴 맛을 싫어하는 나도 에스프레소를 찾는 때가 있다.
달달한 걸 먹을 때다. 이젠 나이가 들어 고혈당을 감당할 수가 없다. 달달한 걸 먹긴 해야겠고, 혈당은 감내하고 싶고. 그럴 땐 커피가 제격이고, 일반 커피보다 더 진한 에스프레소는 쓰지만 친근한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쓴 맛도 이젠 제법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이 쓰다고 살아가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글을 마치는 지금 이 순간.
마침, 캡슐 커피 머신이 굉음을 내며 쓰고 검은 액체를 찔끔 뱉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