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글쓰기의 정석>
능동적인 창작의 고통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나는 방황한다.
괜스레 바카라상 위를 정돈하거나, 뜬금없이 스트레칭을 한다. 마음먹은 글 하나를 쓰기 전까지 방을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 기어이 방을 나서 냉장고에 뭐가 있나 들여다보고, 차분히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뒤에 가 시답잖은 손가락 찌르기 장난을 한다. 훽 돌아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매섭다. 나는 주눅이 들어 다시 방으로 와 모니터 앞에 앉는다.
하얀 여백에 깜빡이는 커서는 마치 날름거리는 혓바닥 같아 약 오른다.
뭔가를 빨리 써내라며 재촉하는 그 얄미운 모습이란. 손가락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있던가를 생각하다 기어이 한숨을 내어놓는다.
창작의 고통은 이처럼 매섭다.
대단한 작품을 짓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로서는 꽤나 진지한 고민인 것이다. 무언가 마음속에선 자신을 내보내달라고 쿵쾅대고 있고, 머릿속엔 총체적으로 이런저런 좋은 아이디어가 흩날리는데 아무것도 못 하겠는 그 순간. 무기력함이 온몸을 감싸는데 그 느낌은 구체적이다 못해 추상적이고, 추상적이다 못해 구체적이다.
하지만 때론 이런 고통이 즐겁다.
창작의 고통은 능동형이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엔 굴욕감이 들지만, 내가 만들어내는 고통엔 달달한 구석이 있다. 무기력감에 절룩거리긴 하지만, 고통 속에서 때론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 뒤에 오는 희열을 맛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고통스러워도, 어쩌면 그 고통을 즐기며 글쓰기를 이어간다.
사람은 결핍에서 성장하는 법.
창의력이 부족하니, 창작의 고통은 어느새 내 친구가 되었다. 글이 항상 잘 써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루 하나 이상 글을 쓰자던 욕심도 내려놓게 되었고,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단 기다려줄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와 더불어,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방법도 나름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내 글의 제목을 ‘카피라이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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