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눈을 뜬다.
이불속이 아직 따뜻하다. 그러나 일어나야 한다. 중력을 이겨내야 한다. 기껏해야 몸무게에 달하는 발버둥이지만 실상을 지구의 무게를 반(反) 해야 하는 거사(巨事)다. 이를 닦는다. 샤워기를 튼다. 물줄기 안에서 생각한다. 지금 나의 일어남은 무엇을 위함인가. 아니, 이 하루의 반복은 축복일까 저주일까를.
반복은 대체로 저주라는 개념에 수렴한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 특히 빅토리아 시대(19세기)에는 범죄자들에게 육체적으로는 매우 고되지만, 생산성은 전혀 없는 '단조롭고 무의미한 노동'을 부과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러닝머신 (The Treadmill)은 오늘날엔 Gym의 기구이지만, 당시엔 공포의 형벌 도구였다. 1818년 엔지니어 윌리엄 커빗이 고안한 이 기구는 죄수들을 하루 6시간에서 10시간까지도 걷게 했다. 이를 활용하여 곡물을 빻거나 물을 긷는다면 우회적인 '보람'의 방법이 되겠지만, 처벌자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아무런 결과물 없이 허공을 돌리는, 이른바 '공기 빻기(Grinding the air)로 그 어떠한 '의미'를 원천 차단했다.
다시 말해 '반복'은 '지루함'을 꽃피우고, '지루함'은 '무의미함'을 양산한다.
인류에게 있어 이러한 '반복'에 대한 '회의'는 지속되어 왔다. 재밌는 건 이곳으로부터 양갈래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나의 길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재미'로, 다른 길은 '의미 찾기'로 통한다. 사람은 늘 '불편하고 지루한 길' 보다는 '편하고 자극적인 길'을 선택하길 좋아한다. 유물론에 기반한 자본주의 슬롯는 '돈'으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더 쉽게, 더 자극적인 걸 얼마든지 소비할 수 있는 시대다.
반복되는 샤워기 물줄기 안에서, 나는 그 양갈래 길을 본다.
쉽고 자극적인 길을 선택할 것인가, 불편하고 지루한 길로 향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늘 후자다. 그래서 출근을 한다. 고상한 의미가 있어서? 아니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의미가 생긴다. 월급 이상의 것들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돈은 한 방에 거머쥐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꾸준히 끊기지 않고 들어오는 돈이다. 슬롯생활, 치열한 경쟁, 신물 나는 사내 정치. 예전에 나는 그것들을 부정했지만, 지금은 순순히 그것들을 인정한다. '부정'이라 말했지만, 어쩌면 나는 그것들을 '회피'했는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고 지루했기 때문이다.
결국, 불편하고 지루한 것을 선택한다는 건 '반복'에 뛰어들겠다는 큰 다짐이다.
'반복'은 다른 면에서 보면 '안정감'을 동반한다. 여러 번 해본 것, 여러 번 가본 길이 익숙한 이유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안정을 바탕으로 한 'Add up'의 결과다. 불편이 반복되어야 사람은 그걸 깨닫고 다음 세상을 꿈꾸게 되어 있다. 변증법을 기반으로 한 '정-반-합'의 수순이다. '반복'은 이러한 '정-반-합'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반복'은 생각보다 꽤 많은 선물을 준다.
지겹게 반복되는 출퇴근이, 내게 있어선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루틴'이다. 이 흔들리지 않는, 지루하고 꽤 불편함을 바탕으로 나는 안정감을 찾고, 그러하기에 나는 불안정한 무언가를 꿈꾼다.
강력한 루틴, 변증법의 흐름, 안정을 기반으로 한 불안정으로의 나아감.
반복이 주는 선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