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 놓지 못하는 비겁함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스테르담

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비겁하다.

'때로'라는 게 어쩌면 조금은 다행인 듯싶다. 글을 쓰기 전엔 비겁함의 빈도가 '늘'이었으니. 아니, 스스로에게 비겁하다는 걸 알지도 못한 채 숨 쉬어 왔으니 말이다.


예전 어느 예능 프로에선 게스트에게 눈을 가리고 상자 안에 있는 걸 손으로 만져 그것이 무엇인지 답을 맞히라고 한 적이 있다.

상자 안엔 작고 귀여운 햄스터가 있었지만 눈을 가린 게스트는 그 느낌이 살짝 나자마자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마도 게스트는 자기를 해할 그 어떤 괴물로 상자 안의 것을 인식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공포는 보이지 않음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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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 놓는다'란 말은 안의 것을 밖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나의 비겁함은 내어 놓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있는 걸, 제대로 꺼내어 보지 못하는 마음이다.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서다. 햄스터를 괴물로 인식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마주하는 건, 꽤나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억압된 감정은 언젠가 폭발한다는 걸. 글쓰기 전에는 이러한 폭발이 잦고 또 컸다. 삶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하고 엇나갔다. '자극'과 '반응' 사이 '글쓰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삶의 변화를 맞이한 건 그즈음이었다. 이제 나는 자극이 온다고 해서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마음속의 불편한 감정들을 마주하는 것도 꽤나 익숙해졌다.


비겁함을 느끼는 지금,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하나 꺼내봐야겠다. '내어 놓는 글쓰기'는 언제나 옳다. 그래야 비로소 내 안의 것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이 햄스터이든, 정말로 괴물이든. 그것들을 마주하여 나와 그것들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고, 그것들이 왜 생겨났는지를 하나하나 묻고 답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잘 살기를 원하는 순수한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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