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마음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
이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상한 이야기다.
'자기기만'
그런 용어가 있다.
'동기화된 추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한 방향이 아닐 수 있다.
모순된 여러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너와의 연결은 유지하고 싶다.
관계에 따른 부담은 지고 싶지 않다.
상대에게 상처 주는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싶지 않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있다고 해보자.
이 셋은 서로 충돌한다.
그런데 이 모순을 반드시 의식적으로 해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실제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다만 지금 너무 바쁘고 몸도 좋지 않아서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자신이 관계에 충분히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여전히 관계를 원한다는 자기 인식이 공존할 수 있다.
자신의 의도는 좋은 것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행동은 상황 탓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계가 점점 나빠져서 헤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면,
마치 없는 일처럼 침묵할 수도 있다.
혹은 대화를 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
관계의 모순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갈등 회피와 자기기만이 결합했을 가능성이 있다.
상대가 그렇게까지 좋은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정말 호감이 있었지만, 그 호감에 따르는 바카라임은 막상 감당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쉽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호감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자신은 아직 관계를 끝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이미 관계에서 밀려나 있는 상황이 된다.
알지 못하는 것인지
자신이 아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인지는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기기만을 했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엄밀하게는 자기 자신도 끝내 모를 수 있다. 너무 슬픈 일인가. 그렇게까지 숨겨야 할 것이 있나 보다.
그것도 당시에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기기만이겠지.
왜 그러는 걸까?
그것은 자기기만이 필요해서 하는 것이다.
왜 필요할까?
자기 성찰을 통해서 그 진실에 닿을 수 있다.
나는 왜 자기기만을 하고 있는가?
자기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증거를 통해서 상황을 파악하듯이.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의도와
실제로 반복하는 행동 사이의 간격을 보지 않을 수 있다.
굳이 모르고자 숨기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솔직하지 못했다면,
상대가 아무리 질문해도 명확한 답을 말할 수 없다.
자기 마음을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상대의 질문은 대화의 기회가 아니라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라는 요구가 된다.
그런 것은 외부에서 요청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숨겨진 내면의 진실은 언제 대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서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지는 상태가 되면. 아마도.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런 것이 뭔지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은 '좋아서' 하는 짓이다.
그것이 설령 스스로에게 고통이 되는 것일지라도
큰 의미에서 본다면, 자신이 '좋으니까' 그런 것들을 하는 것이다.
힘든 상황이 '왜 좋냐'라고 그런 질문은 넣어두자.
성장과정의 트라우마나 상처받은 내면아이 같은 이야기는 너무 사설이 길다.
어쨌든, 그런 모순이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기서 '좋다'는 것의 의미를 풀어서 말하자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그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심리적 보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기만은 왜 하는 것일까?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자신이 알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뭔가 보호하는 것이 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보호하고 싶은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그걸 알면, 그것이 왜 생겨났으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게 중요하면 계속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고,
별 것 아니면 인식하고 변화하면 된다.
아주 심플하고 깔끔하다.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만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알아가고 싶은 것인지,
연애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인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
이것들은 전부 다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자기가 무엇을 원하든
상대방에게도 독립적인 의사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욕망을 설명하는 능력과
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능력은 다르다.
지적인 능력과
자신의 마음을 아는 능력은 다르다.
자기 마음을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말하고,
원하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닐까 싶다.
힘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살던 대로 살고,
문제가 생기면 이전처럼 그렇게 처리하면 된다.
결과는 이전과 동일하다.
자신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에 관계를 잃었는데,
관계를 잃은 이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일한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대면하면 된다.
이상한 이야기다.
이상한 이야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