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덕분에 신경계가 있는지도 모른 채 모든 걸 내려놓고 푹 잤다.
"어? 뭐였지?"
엄청나게 행복하다.
어제의 일을 복기해 봤다.
"왜 푹잤지?"
영화를 봤다.
1승.
박정민과 송강호가 나온다니 안보는 것이 이상하다.
초록물고기 영화 이후 송강호의 영화를 쫓아다녔다.
영화를 틀자 나는 뱃멀미를 하듯 울렁였다.
수많은 혹평을 할 수도 있는 가벼운 이야기지만,
꼰대들의 "라테는 말이야" 버전의 대사들이 내 마음속 바다에서 애잔하게 여울 쳤다.
"이상하지? 그게 왜?"
늙은 중년의 꼰대, 싫어한다.
친구와 폭풍 수다를 했다.
친구가 말했다.
"나도 꼰대 싫어."
"근데 그거 알아? 나도 꼰대야."
"그렇지. 나도 그래."
"우린 그러지 말자."
"그래. 그럴 수 있지."
병원을 갔다.
"환자분, 1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문득 내 상태를 확인했다.
이런. 나는 화장도 하지 않고
금색 반사광이 도는 연핑크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심지어 내 등에는 하얀 패잔병이 업혀 있었다.
"아, 선글라스를 벗어야 할까?" 그러나 뭘 해도 이상해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내가 문을 채 열기도 전에 의사는 싱글벙글 신이 나 있다.
"경과가 좋습니다."
다행히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았다. 패잔병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했다.
약국을 갔다. 문을 닫았다. 다른 약국을 갔다.
어깨가 아프다.
나보다는 내가 끌고 다니던 패잔병이 더 심각한 상태였다.
굳이 비장하게 그를 어깨에 짊어질 생각은 없었다.
햇살이 좋아서 운전하기가 싫었을 뿐이다.
전투 기간: 4년
증상: 에너지 고갈
원인: 배터리 수명?
엄청나게 거대한 하얀 장바구니에
패잔병을 조심스레 넣고는 어깨에 메고 있었다.
트레이더스는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장바구니를 판매했다. 살 때는 그 정도로 클 줄 몰랐다.
거대한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물건은 매우 하찮고 작고 가벼워 보인다.
그래서 그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그가 흔들리며 내 몸을 칠 때마다 나는 물었다.
"아파?"
"슬퍼?"
"정신 차려."
그는 입가에 머리카락을 물고 얼굴은 전쟁터의 먼지들이 남아 있었다.
그의 상태를 보던 전문가는 그를 툭 쳤다.
없던 먼지가 후룩하고 다공성의 두툼한 마우스 패드 위에 쌓였다.
"헉! 저. 먼지..." 나는 차마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전문가는 그 꼴을 보고도 아랑곳 않고 미동도 하나 없이
빠르고 냉정하게 진단을 내렸다.
"배터리는 문제없어요. 에너지 고갈도 아니에요. 흡입구가 문제네요."
전문가의 말에서는 전문가의 포스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에너지를 감각하는 인간이다. 존. 존. 존경스러웠다.
조금 더 머물렀다면,
천막을 짓고 그 전문가를 경배하는 찬양의 공간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LG A/S센터를 내방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자, 모두 기도합시다." 라며,
찬송가를 선창하고 경배드렸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내방객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얌전히 거대한 장바구니를 어깨에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처 입고 쓰러진 그는 잠시 막혔을 뿐이다.
막힌 것의 형체는 없다.
"부품을 교체하셔도 되는데 지금 이벤트 중이에요. 흡입구 전체를 구입해도 가격이 같아요."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 막힘을 말 한 마디로 해결해 줬다.
나였다면 흡입구 전체를 분해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가 쌩쌩해진 만큼이나 지쳐갔다.
어제 있었던 일들이다.
그리고 난 정신을 잃고 푹 잠들었다.
그는 오랜 시간 먼지를 머금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고
싸리비가 그를 대체하던 기간을 버텼다.
그 덕분에 나는 완전한 숙면을 했다.
오늘도 숙면을 하려면
뭘 해야 할까?
아, 12척의 화분이 기다리고 있다.
장거리 항해를 막 마치고 돌아온 배들은 가벼운 몸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