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원치 않는 속도로 빨려들어갈 때가 있다.

멈춰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이.

bystephanette

토끼 굴은 한동안 터널처럼 곧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아래로 꺾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앨리스는 멈춰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아주 깊은 우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우물이 엄청나게 깊었던 것인지, 아니면 앨리스가 아주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앨리스에게는 주위를 둘러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할 시간이 충분했다.

먼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우물 벽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벽에는 찬장과 바카라장이 가득했고, 군데군데 지도와 그림까지 걸려 있었다.

앨리스는 떨어지는 도중에 선반에서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오렌지 마멀레이드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비어 있었다.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병을 아래로 던질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밑에 있는 누군가를 다치게 할지 모르니까.

앨리스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 병을 지나가는 찬장 속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아래로, 아래로, 또 아래로.
도대체 언제까지 떨어져야 하는 걸까?

앨리스는 자신이 얼마나 깊이 내려왔을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구의 중심 가까이 도착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위도와 경도에 대해서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고양이 다이나를 떠올렸다.

오늘 저녁에는 자신을 몹시 보고 싶어 할 텐데. 누군가 다이나에게 우유를 챙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앨리스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그러다 졸음이 밀려올 무렵, 갑자기 쿵, 쿵!

앨리스는 나뭇가지와 마른 잎이 쌓인 곳에 내려앉았다.

마침내 낙하가 끝난 것이다.


-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 제1장 「토끼 굴속으로」(Down the Rabbit-Hole). 원문을 바탕으로 의역.




갑자기 원치 않는 속도로 빨려들어갈 때가 있다.


커다란 건조기 속에서 검은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떨어지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지만 그럴 때가 있다.

어리둥절해지고

내가 낯설어지는 것이다.

왜 낯선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벅찬 것도

기다리는 것도

혼자 뭔가를 찾아보는 것도

미리 준비하는 것도 힘들다.


내 페이스 대로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도 알 수 없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너무나 강렬하게 원하는 상태,

그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잃을 것 때문에 그런게 아니다.

그냥 그런 상태가 좋지 않을 뿐.


욕망이라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옮겨 다니는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뛰어든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앨리스처럼.


쿵. 바닥에 닿았다.

여긴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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