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잉/생수 비교

같은 원두에 물만 바꾸면 맛은 어디까지 달라질까.

bystephanette

*이글의 생수별 특징은 각 생수 제조사의 공식 자료 기반이다.

*커피 브루잉 관련은 '언스페셜티 에듀'의 자료를 참고했다. 커피 배우기 매우 좋은 플랫폼이다. 애용한다.


커피 바카라을 샀다가 물까지 왔다.

예상했던 일이다.
아니, 예상하지 못했다.


원두를 갈고 물을 붓는 것이 브루잉인데, 생각해 보면 커피 한 잔의 대부분은 물이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원두, 분쇄도, 물 온도, 유속 같은 것은 신경 쓰면서 정작 물은 그냥 물이라고 생각했다.


차의 기본은 물이다.
커피도 다를 리 없다.

그래서 생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바리스타들이 삼다수나 평창수, 아이시스 같은 생수로 커피를 내리는 것을 종종 봤다. 처음에는 수돗물보다 깨끗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물에도 성격이 있다.

브루잉에서 중요한 것은 미네랄 조성이다. 물 안에는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 칼륨, 중탄산염 같은 것들이 녹아 있다. 이 미네랄 조성은 커피에서 느껴지는 산미와 단맛, 질감, 향미의 선명도에 영향을 준다. 특히 중탄산염이 만드는 알칼리도는 커피의 산을 완충한다. 알칼리도가 높으면 산미가 부드러워지거나 눌릴 수 있고, 너무 낮으면 산미가 날카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총경도 하나만 보고 “이 물은 반드시 단맛이 난다”라고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SCA 역시 물의 총 미네랄량과 알칼리도, 경도 등을 별개의 변수로 다룬다.


커피 대회에서 사용하는 물에도 기준이 있다. SCA 브루어스컵 기준의 공식 물은 목푯값이 TDS 약 85 mg/L, 칼슘 경도 약 51 mg/L as CaCO₃, 총 알칼리도 약 40 mg/L, pH 7.0 정도다. 허용범위도 따로 있다. 이것이 세상 모든 커피에 가장 맛있는 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커피를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꽤 유용한 기준점이다.


커피용 물은 미네랄이 너무 없어도 재미없고, 너무 많아도 둔해질 수 있다.

적당한 곳을 찾는 문제다.

흠.


국내 브루잉에서 자주 보이는 생수

공식적인 ‘바리스타 생수 사용률’ 같은 통계는 없다. 다만 국내 브루잉 강의와 로스터리 레시피를 찾아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물들이 있다.


평창수, 아이시스 8.0, 백산수, 삼다수.

수입수까지 넓히면 볼빅과 에비앙도 자주 보인다.


실제로 국내 브루잉 교육 과정에서는 평창수와 아이시스 8.0을 준비물로 제시하기도 하고, 다른 바리스타 과정에서는 아이시스 8.0과 에비앙을 사용한다. 원두에 따라 백산수나 평창수를 따로 권하기도 한다. 어느 물 하나가 절대적인 정답이라기보다 원두와 추구하는 맛에 따라 바꾸는 것이다.


재미있다.

원두에 맞춰 물까지 골라 마신다.


1. 제주삼다수

삼다수는 아주 부드러운 물이다.

공식 미네랄 함량은 칼슘 2.5~4.0 mg/L, 마그네슘 1.7~3.5 mg/L 정도다.

칼슘과 마그네슘으로 총경도를 대략 계산하면 약 13~24 ppm as CaCO₃ 정도다.


상당히 연하다.

그래서 삼다수로 브루잉하면 커피의 질감이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고, 비교적 가볍고 깨끗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특히 향이 섬세한 약배전이나 산미가 중요한 원두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묵직함, 낮게 깔리는 맛, 둥근 단맛, 길게 남는 여운 같은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삼다수가 내 취향에서는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교군으로 좋다.

아주 연한 물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원두가 어떻게 변하는가.

궁금하다.


2. 백산수

백산수는 칼슘 3.0~5.8 mg/L, 마그네슘 2.1~5.4 mg/L 정도다.

계산하면 총경도는 대략 16~37 ppm as CaCO₃.

역시 연수다.


삼다수보다 범위상 미네랄이 조금 더 높은 쪽까지 갈 수 있지만, 그래도 굉장히 부드러운 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실제 로스터리 레시피에서도 백산수가 추천된다는 점이다. 어떤 커피에서는 백산수를 썼을 때 산미가 조금 차분해지고 단맛과 바디감이 올라올 수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그러니까 숫자만 보고

삼다수 = 가벼움
백산수 = 무거움

이런 식으로 단순화하면 곤란하다.


결국 실제 커피를 내려봐야 한다.

좋다.


3. 강원평창수

평창수는 국내 홈브루잉 쪽에서 유난히 자주 보인다.

한 국내 로스터리의 브루잉 안내에서는 평창수를 경도 약 65~70 ppm, 알칼리도 약 50 ppm as CaCO₃ 정도로 소개했다. 그 물을 사용하면 바디감이 좋아지고 산미 톤은 조금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

여기서 조금 관심이 간다.


내가 좋아하는 쪽이다.

향을 아주 날카롭게 세우기보다 단맛과 바디를 조금 더 받쳐주는 물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묵직한 원두들과 꽤 잘 맞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다른 국내 브루잉 레시피에서도 산미가 너무 도드라질 때 평창수를 추천하기도 한다.


현재 예상으로는

내 취향 1번 후보.

물론 마셔보기 전에는 모른다.

나는 이미 커피에서 예상을 여러 번 배신당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4. 아이시스 8.0

아이시스 8.0도 국내 브루잉 강의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특히 평창수와 함께 약·중배 전 브루잉용 물로 추천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아이시스는 조금 주의해서 봐야 한다.

생수는 같은 브랜드라도 수원지가 달라질 수 있고, 실제 미네랄 조성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니 ‘아이시스’라는 이름만 보고 모든 병이 완전히 같은 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살 때 병 라벨의 수원지와 칼슘·마그네슘 수치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제 생수 사면서 라벨까지 읽게 생겼다.

일이 커진다.


5. 볼빅

볼빅은 조금 재미있는 위치다. 커피용 물 가이드들에서도 볼빅을 SCA 권장 범위에 비교적 가까운 병입수 혹은 바로 써보기 좋은 대안으로 자주 언급한다. 재현성이 좋다. 프랑스 오베르뉴 화산지대에서 나온 물이고, 회사 설명상 약 5년에 걸쳐 여러 층의 화산암을 통과하면서 여과된다. 그래서 미네랄 조성이 비교적 일정한 자연광천수라는 점이 장점이 있다.


공식 조성을 보면 칼슘 약 12~13 mg/L, 마그네슘 약 8~9 mg/L, 중탄산염 약 74~80 mg/L 정도다.

총경도로 환산하면 대략 60~70 ppm as CaCO₃ 부근이다.

중탄산염을 알칼리도로 환산해도 대략 60 ppm대가 나온다.


삼다수보다 조금 더 바디와 단맛을 받쳐줄 가능성

에비앙보다는 훨씬 덜 둔하고 깨끗함

향미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물이 너무 비어 있지 않음

커피용으로 실패하기 어려운 균형점


그러니까 삼다수나 백산수보다는 확실히 미네랄 존재감이 있다.

그렇다고 에비앙처럼 압도적인 경수도 아니다.

그래서 꽤 흥미로운 비교군이다.


내 취향을 생각하면 평창수와 함께 가장 궁금한 물이다.

평창수와 볼빅.

둘 다 중간 정도의 경도지만 조성은 다르다.

같은 원두에서 단맛의 모양과 질감이 어떻게 달라질까.

벌써 궁금하다.


6. 에비앙

에비앙은 거의 대조군이다.

공식 성분을 보면 칼슘 80 mg/L, 마그네슘 26 mg/L, 중탄산염 360 mg/L이다.

총경도를 계산하면 약 307 ppm as CaCO₃.

중탄산염 기준 알칼리도도 약 295 ppm as CaCO₃ 부근이다.


앞의 물들과 세계가 다르다.

매우 단단한 물이다.

이 정도면 산미는 상당히 완충될 가능성이 있고, 커피에 따라서는 질감이 무겁고 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매일 이것으로 커피를 내리겠다는 생각보다는

경수로 브루잉하면 정말 얼마나 달라지는가

를 확인하는 실험용으로 재미있다.

삼다수와 에비앙을 같은 원두로 비교하면 거의 물 실험의 양 끝을 보는 셈이다.


정리해보자.

삼다수

매우 연함

맑음, 가벼움, 향미가 깨끗하게 보일 가능성


백산수

연함

부드럽고 비교적 깨끗한 방향


평창수

중간 경도

단맛·바디가 조금 더 살아날 가능성


아이시스 8.0

수원지 확인 필요

국내 브루잉에서 자주 쓰이는 실용적인 선택


볼빅

중간 경도 + 중간 알칼리도

단맛과 질감 비교에 재미있는 물


에비앙

매우 높은 경도·알칼리도

산미 억제, 무거움. 대조군으로 재미있음


물론 이 표는 맛의 정답표가 아니다.

같은 경도라도 칼슘과 마그네슘의 비율이 다르고, 알칼리도가 다르다.

원두의 로스팅 정도와 가공 방식도 다르고, 분쇄도와 물 온도도 영향을 준다.

결국 마셔야 한다.

과학의 결론이 다시 시음이다.

굿.


그런데 왜 바리스타들은 굳이 생수를 쓰는가.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첫 번째 이유는 재현성이다.

수돗물은 지역과 계절, 정수장, 배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생수는 적어도 특정 제품과 수원지를 고르면 비교적 일정한 물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맛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미를 조금 더 살리고 싶으면 물을 바꿀 수 있고, 단맛과 바디를 조금 더 강조하고 싶을 때도 물을 변수로 사용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원두를 바꾸지 않고도 커피가 달라진다.

이건 놀기 좋다.

나에게는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라면

나는 산미가 화려하게 번쩍이는 커피보다는

묵직하고, 낮게 깔리고, 달고, 고소하고, 둥글고, 여운이 긴 쪽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둔하고 탁한 것은 싫다.

묵직한데 깨끗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 예상으로는 아주 연한 삼다수보다는 평창수나 볼빅처럼 중간 정도의 경도를 가진 물이 더 취향에 맞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자이언트 스텝스처럼 원두 자체가 이미 묵직한 경우에는 오히려 삼다수가 맛을 풀어주면서 단맛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


전에 자이언트 스텝스에 물을 꽤 많이 더했더니 뭉쳐 있던 맛이 풀리고 단맛이 직선으로 길게 이어졌다.

그 경험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러니 예상은 예상일 뿐.

직접 해보자.


실험 계획

원두는 하나로 고정한다.

가능하면 향미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원두가 좋겠다. 자이언트 스텝스로 해도 재미있겠다.

분쇄도, 원두량, 물 온도, 푸어링, 추출시간은 전부 같게 한다.

물만 바꾼다.


첫 번째는 수돗물. 두 번째는 삼다수. 세 번째는 평창수. 네 번째는 볼빅. 여기에 백산수나 아이시스를 추가해도 된다. 에비앙은 나중에 극단값으로 넣어보자.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면 혀가 멍청해질 테니 세 종류 정도씩 나누는 것이 낫겠다.

커피가 뜨거울 때, 따뜻해졌을 때, 식었을 때를 각각 기록한다.

산미. 단맛. 바디. 향. 애프터. 깨끗함.

그리고 가능하면 GH/KH 키트로 물의 총 경도와 알칼리도도 재본다.

그러면 숫자와 혀가 연결된다.

그게 제일 재미있다.


차의 기본은 물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이제 마셔보자.


맛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으면 어떤가.
어차피 나에게 맞는 커피를 찾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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