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굳이 행복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bystephanette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글이다.

아주 미묘하지만 서로 다른 고통을 구분할 필요는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통과하는 것이다.
"아, 고통스럽다."
이런 정도의 생각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고통들

고통은 그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맞은 화살을

다시 심장에 꽂는 것은 아니다.

그런 고통은 할 필요가 없으니 화살을 든 자신의 손을 내려놓자.

고통의 희열을 지속적으로 느끼기를 원하는 취향이 아니라면 의미는 없다.


그렇다고 생생한 기억을 꺼내어

어쩌다 보니 고통도 따라오는 것이라면,

그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 다른 목적과 의미가 있어야 한다.


트라우마라고 해서

그 고통을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현재 버전으로 다시 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을 꺼낼 수도 있다. 그때의 고통이 따라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주체는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자신은

피해자일수도 있고, 생존자일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지 일련의 과정 중의 한 지점일 수도 있다.

그것을 정하는 것은 자신이다.

과거의 자기가 아니라 현재의 자기다. 혹은 미래의 자기다.




고통으로 인해

이전에 갖고 있던 정체성과 수많은 역할들을 유지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일부러 하려고 해서가 아니다.

그냥 갑자기 닥치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이나 내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방황을 하기도 하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가 있다고 생각하자.


파도와도 같다. 고가 높으면 다시 아래로 그만큼 떨어진다.

나는 파도 위에서 출렁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출렁이는 나를 바라보는 존재다.


아래로

위로.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점에 평온이 찾아온다.

나는 그 속에서

다시 행복해지고,

보다 더 중심을 잘 잡게 되고,

온전한 평온을 느낀다.


고통이 오면 머문다.

"아, 고통스럽군."

그리고 평온이 오면 머문다.

"좋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고통만큼이나 갑작스러운 행복도 당도한다.

"오, 행복하군."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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