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얼마나 어떻게 왜 다른지 궁금하다.
나는 일어난 일을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듈로 기억한다.
이는 한 가지 이유라기보다, 내 사고가 '전체 이야기를 먼저 만드는 방식'보다 '정보 조각을 보존한 뒤 관계를 찾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고 사고하는 순서는 대략 이렇다. 관찰 -> 개별 모듈 저장 -> 서로 연결 -> 패턴 발견 -> 해석 -> 필요하면 서사화. 이에 비해 많은 사람은 중간 단계를 상당히 빨리 압축해서, A + B + C -> "아, 이런 이야기였구나."라고 만드는 것 같다. 나는 A, B, C를 한동안 각각의 상태로 가지고 있는 편에 가깝다. 그래서 나중에 전혀 다른 D라는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 이야기를 유지하기보다 A, B, C, D의 관계를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왜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는지는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나는 결론보다 세부 정보에 높은 비중을 둔다.
"그때 정확히 무슨 말을 했지?"
"순서가 어떻게 되었지?"
"이 행동과 저 행동 사이에는 얼마나 시간이 있었지?"
같은 개별 요소가 먼저 남는다.
둘째, 인과관계 확정까지 지연 시간이 길다.
"그가 이렇게 행동했으므로 이유는 이것이다."라고 바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행동은 이것이다. 하지만 이유는 아직 모른다."라는 상태를 비교적 오래 유지한다.
그러면 기억과 해석도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분리된다.
주관적인 해석으로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한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셋째, 선형적인 사고보다 연결형 사고가 강하다.
하나의 기억 모듈은 하나의 이야기에만 속하지 않는다.
A는 C와 연결될 수도 있고 F와 연결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질문에서는 A가 B, E와 연결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은 사건도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구조로 다시 조립할 수 있다.
넷째, 오랫동안 글을 쓰고 분석해온 습관도 이런 사고를 강하게 만들었다.
경험을 곧바로 결론으로 바꾸기보다 소재로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것들과 연결하면서 패턴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현실의 완벽한 원본이 아니다.
기억 자체도 선택되고, 누락되고, 재구성된다.
다만 나는 기억을 하나의 서사로 빨리 압축하지 않는 편이다.
이 방식에는 장점과 비용이 모두 있다.
장점은 성급하게 만들어진 이야기 하나에 덜 갇힌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의 해석을 비교적 쉽게 다시 구성할 수 있다.
반대로 여러 모듈이 오랫동안 열린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을 여러 방향에서 오래 검토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베이지안 사고가 내게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서는 대략 이런 식으로 대응시킬 수 있다.
모듈 = 관찰된 자료
모듈을 연결해서 만든 설명 = 가설
새로운 모듈 = 새로운 증거
그리고 새로운 증거가 들어오면 기존의 가설을 유지할지, 수정할지, 버릴지를 다시 판단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스토리 우선'보다는 '데이터 우선'에 가까운 사고를 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만들기 전에 재료들을 각각의 형태로 오래 보존해두는 것이다.
나에게 스토리는 기억의 저장 방식이라기보다,
기억의 모듈들을 선택하고 연결하고 배열한 뒤에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베이지안 통계학을 구경하고 있다.
불확실한 것에 대해 어느정도 불확실한지 말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어려운 수학 공식 너머에 생각보다 아주 흥미로운 세계가 숨어 있다.
진도는 안나간다.
서사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바카라을 읽다가 가끔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중이다.
이럴 땐 머리 좋은 사람이 부럽다. 흠.
사족
나는 주관적 가중치를 일찍 고정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현재의 가중치는 잠정적이다.
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의 감정과 판단은 상당히 많이 다를 수 있다.
나는 판단이 끝나기 전에 자료를 폐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판단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자료는 폐기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저 개인적인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