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를 사놓고, 나는 먼저 게이샤를 마시러 간다. 1

안 하던 짓을 해보는 것이 재미

bystephanette

《커피, 뭐부터 알면 돼?》

—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왜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기록


나는 갈색 계열의 커피를 주로 마신다. 홈카페 취향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원두는 완전히 다른 쪽에 있다.

집에서 내려마시지 않는 이유는

그 풍부한 맛과 향을 내가 구현할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기엔 원두가 상당히 비싸다.


"안 하던 짓을 해보자."

요즘의 내 모토다.


늘 가는 길을 가지 않고,

늘 머물던 공간을 바꿔나가고,

늘 하던 사고방식이 아닌 다른 길을 내고,

늘 하던 행동 패턴을 깨고 다른 것을 해본다.


왜 그러냐면,

재미있다.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게이샤를 주문했다.

수망 사이즈의 도자기 로스터기도. 이런. 심상치 않다. 과연. 으으으으.

두렵다. 떨린다. 설렘인가. 모르겠다. 이야, 신난다.

생두를 구입하는 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 들이기로 했다.

마구 버려도 되는 연습용 생두를 대거 들이게 될지도.


주문한 원두

파나마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카냐스 베르데스 트라피체 게이샤 애너로빅 내추럴

콜롬비아 엘 브리얀테 게이샤 워시드

게이샤 중에서도 완전히 다른 두 종류를 주문했다.


그럼에도 게이샤를 집에서 다룰 자신은 없다.

본격적으로 원두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찾아보기로 했다.

사전 준비라고 할까.


나는 커피를 좋아할 뿐,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취향을 따라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의 과정이자 기록 정도라고 하자.


궁금한 것


"나는 이게 더 좋은데.

왜 그럴까?"


내가 좋아하는 커피들을 왜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다.

향과 맛과 질감과 그 조합들.

그러니까 나의 매우 주관적인 커피의 기억들을 뒤져서

과거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취향을 보다 선명하게 알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원두를 어디서 어떻게 맛볼지를 정하기 위해서다.


최종목표

"원하는 커피를 직접 내려보겠다."

너무 거창하다.

꿈이 너무 크다.

바꿔보자.

"원하는 커피를 어떻게 마실지 정할 수 있다."


가. 원하는 커피를 명확하게 알아간다.

나. 바리스타나 커피전문점 어디로 가서 마실지 혹은 집에서 어떤 방식으로 내릴지 정할 수 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비싸면 잘하는 곳에서 마시면 되고, 집에서 내릴지 전문가에게 맡길지 정하면 된다.

내가 구분하는 맛과 향의 수준을 가늠하면, 그 정도에 맞게 즐길 수 있다.


정말 조심스럽다.

멋진 커피를 그에 맞게 준비하는 마음가짐이로군.

스크린샷 2026-10-05 022151.pngCoffee Taster’s Flavor Wheel 포스터 / 이미지 출처: SCA 공식 홈페이지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의 공식 Coffee Taster’s Flavor Wheel 포스터다. 알록달록해서 궁금했다.


센서리

센서리란 커피의 맛과 향을 체계적으로 느끼고 구분하는 훈련이다.

센서리는 원두의 향이 어떤 계열인지, 산미가 레몬 같은지 사과 같은지, 단맛이 꿀 같은지 카라멜 같은지, 질감이 묵직한지 실키한지, 끝맛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구체적으로 분해해서 보는 것이다. 향(aroma), 풍미(flavor), 산미(acidity), 단맛(sweetness), 바디(body), 애프터테이스트(aftertaste), 밸런스(balance) 같은 요소를 본다. 여러 커피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내 혀와 코가 무엇을 감지하는지”를 훈련한다. 예를 들면 같은 에티오피아 원두라도 하나는 재스민·베르가못처럼 느껴지고, 다른 하나는 블루베리·와인처럼 느껴진다. 그 차이를 구분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이런 표가 없었다. 찾아보니 Flavor Wheel 자체는 1995년부터 있었다. 다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2016년, WCR의 Sensory Lexicon을 바탕으로 전면 개정된 버전이다.

내가 커피에서 멀어져 있던 사이, 커피의 언어가 꽤 정교해졌다.

오~ 완전 신기하다.


와이너리의 향 샘플병 그리고 커피 센서리

와인 소믈리에들이 향을 공부할 때 쓰는 시향샘플이 있다. 실제 음식 냄새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다. 표현하는 향의 단어와 시향의 향은 조금 다르다. 특정 향을 대표하는 휘발성 화합물이나 표준화된 향 조합을 사용해서 “이 계열의 향은 이것”이라는 기준점을 만들어 주는 도구다. 그래서 실제 딸기, 복숭아, 커피, 가죽 냄새보다 훨씬 단순하고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재미있다. 예를 들어, 딸기 냄새는 수십~수백 종류의 휘발성 물질이 섞여 있고, 당·산·수분·온도 같은 요소까지 같이 영향을 준다. 반면 향 샘플병은 그중 딸기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핵심 신호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코로 맡으면 “아, 딸기 계열!”이라고 알아차리기 쉽지만, 실제 딸기 냄새와 1:1로 같지는 않다.

훈련에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시향의 목적이 실물 맞히기 게임이 아니라, 후각 기억 속에 기준 좌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와인이나 커피에서 희미하게 비슷한 향이 나왔을 때 “이 방향은 블랙커런트 계열”, “이건 바닐린 쪽”, “이건 페놀릭 계열”이라고 잡는 연습이다.

향을 구분하는 것은, 대체적인 분류를 나누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세부 분류로 나누는 것이다.


커피 분야에서는 이 부분이 조금 다르면서 재미있다. SCA의 Coffee Taster’s Flavor Wheel은 WCR Sensory Lexicon을 기반으로 하고, WCR은 110개 향미·향·질감 속성에 대해 구체적인 reference를 지정해 놓았다. 그중 상당수는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실제 음식이나 제품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다. SCA도 향미 훈련에서 이런 레퍼런스를 직접 맡고 맛보면서 감각 기억을 구축하라고 권한다.


향 샘플병은 분류 훈련에 좋다.

“바닐라와 카라멜은 어떻게 다르지?”, “꽃향과 과일향을 빨리 구분할 수 있나?” 같은 훈련.


실제 음식은 현실적인 향 기억을 만드는 데 좋다.

레몬 껍질을 비틀어 맡고, 레몬즙을 맛보고, 말린 레몬 껍질도 맡아보는 식으로 같은 재료의 여러 상태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커피를 마실 때는 세 번째 단계가 생긴다.

표준향, 실제 음식, 커피 속 희미한 유사성


이렇게 연결해 본다.

예를 들어 커피에서 “블루베리”라고 할 때 실제 블루베리 주스 맛이 나는 게 아니다. 여러 향 성분의 조합이 우리의 기억 속 블루베리와 닮은 방향을 만들어서 그렇게 묘사하는 것일 뿐. SCA도 Flavor Wheel을 사용할 때 처음부터 특정 과일 이름을 억지로 찾지 말고, 먼저 fruity에서 berry로 그리고 그 후에 구체적인 berry처럼 넓은 범주에서 좁혀가라고 되어 있다.

표준향으로 좌표를 만들고, 실제 음식으로 그 좌표에 현실적인 폭을 준 다음, 커피 안에서 유사성을 찾는 것이다.

“저 샘플병 냄새가 실제 음식과 다른데?”라고 바로 이상하게 느끼는 게 오히려 센서리 공부할 때 좋은 질문이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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