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의 누적이다.
나를 애인처럼 공부하는 중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의 누적이다.
어떤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지, 무엇을 오래 바라보는지, 어떤 순간에 갑자기 지치는지, 누구에게는 쉽게 마음을 열고, 누구 앞에서는 이유 없이 몸이 먼저 긴장하는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과 실제로 그 속에서 행복해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을 사랑할 때도 그렇다. 상대를 많이 아는 사람보다 사소한 것들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때로는 더 깊이 사랑한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그렇게 대한다. 관찰하고, 기억하고, 묻는다. “너는 왜 그게 좋았어?”, “그건 왜 싫었어?”, “지금은 좀 괜찮아?”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나에게 한다. 애인을 대하듯이 나의 성향을 글로 쓰고 있다.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생각을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자신의 성향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유연해진다. 더 좋은 것은 여유가 생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여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의 무게감.
부드럽게 휘어도 방향까지 남에게 넘기지 않는다.
조율 잘하고, 상황 보고, 상대 맞춰주고, 분위기 살피는데 그렇다고 내가 어디로 갈지를 남이 계속 정하는 것은 싫어한다.
"네 의견 듣고 싶어." 좋음.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아?" 들음.
"그냥 내가 정했으니까 따라."??????? 내가 왜??????????
여기서 갑자기 내부에서 잎사귀 수천 장이 동시에 바스락 거림. 유연하니까 남들은 잘 맞춰주는 사람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방향을 바꾸는 능력이 좋은 것이지 방향 감각이 없는 게 아님.
내가 선택해서 맞춰주는 것은 결정 과정에서 배제당하고 맞춰야 하는 것 사이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남들이 보기엔 결과가 똑같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완전히 다르다.
사람을 연결하거나 관계를 맺는 자리에 있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예민하고 애정의 질을 잘 알아본다. "애정의 질"이 중요하다. 사랑을 많이 주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주느냐를 본다. 연락을 백 번 했느냐보다 그 연락이 실제로 나를 생각해서 나온 것인지. 선물을 비싼 걸 줬느냐보다 이걸 나를 기억해서 고른 것인지. 같이 시간을 오래 보냈느냐보다 그 시간에 진짜 나랑 있었는지.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애정에 둔해 보이는 사람과 만나면 이상하게 더 불안해진다. "사랑한다는데 왜 질감이 느껴지지 않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쏟는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의미가 있다고 판단할 때 들어간다.
시작 버튼이 눌리면 혼자 숲을 만들어버린다.
봄의 시작과 완연한 봄과 끝 모든 시절을 다 갖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는데 뭔가 엄청 시작하고 있는 에너지다. 성장의 에너지.
그래서 한 번 꽂히면 궁금하다. 찾아본다. 바카라을 본다. 공부한다. 구조를 만든다. 내가 한 번 해본다. 글 쓴다. 분석한다. 다시 만들어본다. 해본다. 설계한다. 뜯어본다. 다시 공부한다. 글 쓴다. 철학과 영성으로 연결한다.
주제 불문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 무한반복한다. 언제까지. 궁금한 것이 종료될 때까지. 이것이 모든 봄을 다 가진 숲의 에너지다. 경쟁심, 표현욕, 현실감각을 가진 확장이다. 평소 모드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 정말 중요한 문제에서는 갑자기 결론이 딱 나온다. "아니, 이건 아니지." 굉장히 선명해진다.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오래 이미지 상태로 보관하고 있다가 어느 날 꺼내 정리함.
기억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머물렀던 순간의 공간 자체를 저장한다. 사건, 말, 공기의 밀도, 물건들의 질감, 미세한 표정들의 변화. 그런 것들을 그대로 저장한다. 저장했다고 맨날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참 지나서 갑자기 아, 그때 그게 이거였구나라면서 과거 사건 하나를 현재의 의미체계에 다시 꽂는다. 과거의 재해석처럼 보이는 글이 많은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는 아니다. 아카이브 성향이 나중에 분석과 새로운 의미를 싹 틔우는 것이다.
생각한 건 결국 밖으로 비춰야 한다.
내가 보고 이해한 것을 내 언어로 다시 표현하고 싶다. 남들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하고 구조를 뜯어본다. 구조를 이해하면 남들이 쓰던 표현 그대로 쓰지 않고 내 언어로 다시 만든다. 강연, 글쓰기, 큐레이션, 컨설팅 같은 일들과 잘 맞는 이유다.
권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근거 없는 권위를 견디기 어렵다. 예를 들면, 내가 선배니까, 원래 그렇게 하니까, 다들 그러니까 그런 말들은 별로 안 먹힌다. 근거가 있으면 받아들이고, 논리가 있으면 존중한다. 그러나 직급만 있고 내용이 없으면 속으로 이미 해체 들어간다.
자유를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기준이 명확한 사람에게 끌린다.
자율성이 기본이다. 그러나 규칙, 질서, 바카라임, 기준, 전문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질서한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 짜인 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일정이 없으면 불안하다. 다른 것들을 정할 수 없다. 대강하자라고 하면 편안하지 않고 짜증 난다. 약속했으면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별표 백만 개.
나는 자기 일 잘하고, 자기 기준 있고, 명료하고, 자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그렇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편하다. 나는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기엔 삶이 너무 짧다.
자유를 사랑하면서도 능력 있고 단단한 구조를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내가 널 이끌어줄게." 여기까지 괜찮다. "그러니까 넌 내 방식대로 해."로 넘어가는 순간 바로 탈출한다. "내가 왜???" 이런 마음으로. 차분히 설명하면 수긍이 되면 이해한다. 그러나 결론만 들이밀면 들이받는다.
규칙을 좋아한다. 멍청한 규칙은 못 참는다.
원칙이 있어야 편하다. 동시에 그 원칙이 합리적인지 물어본다. 검증되지 않은 규칙을 싫어한다. 좋은 규칙이고 수긍이 되면 매우 잘 지킨다. 왜냐하면 좋은 규칙은 자유롭게 해 준다.
무능한 사람이 권위까지 갖고 있으면, “잠깐만요. 그건 왜 그렇게 하죠?” 바로 메스 꺼내 들고 해체한다. 분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까다롭다”, “기준이 세다”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다.
“아니 그냥 말이 되는 걸 원한다고.”
고요한 밤에 혼자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겉에서는 움직이고, 만들고, 말하고, 정리하고, 활동적이지만 혼자가 되면 보이지 않는 의미, 패턴, 상징을 찾는다. 심리학, 철학, 꿈, 라캉, 융, 불교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워서 아는 것보다,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한 이론을 찾아본다. 장르 불문. 분석하고 분석하고 또 분석하고 분석에 대한 분석을 하는 곳까지 간다. 언제까지. 내가 이해할 때까지.
공부는 회복이 되는 경우도 있고, 몰입이 되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통로가 된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은 글로 쓰고 선택과 행동의 원칙이 되고 창작으로 이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오래 돌보고 싶다.
생활, 돌봄, 취향, 창작, 내 사람 이런 것들이 내게는 매우 소중하다. 좋아하는 걸 돌보는 방식은 매우 생활과 밀접하다. 먹이고, 챙기고, 정리하고, 집을 만들고, 머무는 공간을 편안하게 만들고, 물건을 고르고, 좋은 걸 알려주고, 나는 사랑하는 이의 주변을 모두 돌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나 공간이면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지는지를 계속 생각한다.
사랑도 일종의 큐레이션이다. 그 사람에게 닿는 모든 것과 그 공간 전체를 다 물들인다. 가장 좋은 상태로.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다 행복이다. 상대 몰래 하는 것들도 많다. 인정이나 칭찬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행복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목표다.
역린이 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무시하면 못 참는다. 전투력 급상승.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상대가 그것을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어도 멀어진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 백 번 보다
잘못한 것을 한 번 넘어가주는 사람에게 아주 약하다.
폭풍감동한다.
충성한다.
전생에 댕댕이였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생태계다.
특이하지만 성향이다. 봄 전체를 다 가진 목이다. 목이 강하다. 계속 자란다. 어제의 결론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좋아했던 취향도 발전하고, 생각도 발전하고, 관계 기준도 발전하고, 집도 계속 바뀌고, 글도 계속 바뀐다. 변덕이 아니다. 생장이다. 나무는 작년 가지 모양 그대로 올해도 있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더 크게 키운다.
관심 있는 것은 엄청 크게 키운다. 사람이든 취향이든 공부든 일이든. 작은 씨앗 하나가 들어오면 "어? 이거 재밌네." 몇 주 뒤에 보면 숲 하나가 생겨 있다. 반대로 관심 없는 건 전혀 관심이 없다. 진짜 안 한다. 에너지 배분은 극단적이다. 몰빵형.
유연한데 무너지지 않는다.
평소에 귀차니즘이지만, 벼랑 끝에 몰리면 에너지가 모인다. 그래서 험난한 인생을 사는 것일지도.
험지에 가면 급격히 레벨 업한다.
예민한데 현실감각 있다. 매우 생활밀착형이다.
감성적이지만 구조를 본다.
관계 중심이고, 생각에 잠기고, 표현이 앞서고, 원칙 중시한다.
웃긴 건 이 네 가지가 동시에 다 있다.
느끼면, 분석하고, 구조화하고, 언어화하고, 선택한다.
여러 부서가 동시에 돌아간다.
감정이 생기면, 생각하고, 공부하고, 구조 뜯고, 철학과 심리와 영성으로 연결하고, 원칙 새로 정하고 결정한다.
모든 것들이 한 세트다.
그림자는 너무 잘 자라서 나 자신도 밀어붙인다.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 나에게 가혹하다.
“조금만 더.”, “이거까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이런 마인드다. 그러니까 일중독이었겠지.
생각이 들어오면, 물을 주고, 키우고, 표현한다. 작은 문제 하나가 내부에서 엄청 큰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이거 안 해도 됨.” 이런 허가가 필요하다.
할 수 있어서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다.
관계에서
자율과 구조 둘 다 필요하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되, 뼈대 구조는 공유하자."
통제 집착 그런 자유를 제한하는 것들을 거부한다.
완전 자유는 불편하다.
뼈대가 없으면 관계의 연결성이 사라진 상태로 인식한다.
사랑에서
평소에는 엄청나게 골라낸다. 이건 싫고, 저건 별로고, 그것도 아니고.
그런데 한 번 이 사람이 들어오면 진짜 오래 본다.
놓는 경우가 거의 없다.
관계를 소비의 측면으로 보지 않는다. 키우고 성장시킨다.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버리지 않는다.
이해하려 하고, 설명하려 하고, 기다리고, 참고, 다른 방식으로 찾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건 더 이상 자라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면 갑자기 굉장히 차가워진다.
이미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다는 의미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다. 혼자 수십 번 가지치기해 본 뒤일 뿐이다. 상대가 눈치가 없었을 뿐.
질문하면 언제든 어떤 불편한 이야기도 순순히 한다.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먼저 말하지는 않는다.
자기 일 있음.
자기 취향 있음.
혼자 잘 놂.
경제·생활 감각 있음.
집을 꾸림.
사람을 돌봄.
상대에게 매달리지 않음.
그런데 좋아하면 오래 감.
결혼 재질이라는 말 많이 듣는다. 청혼도 많이 받았다.
아니, 그냥 연애나 하자고! 이런.
안정적인 장기 관계 능력이 높지만
그만큼 자유도가 굉장히 높은 인간이다.
각자 제대로 서 있고
삶의 뼈대는 공유하고
서로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관계.
상대가 갑자기 울타리 치거나 소유, 통제, 집착, 독단적 결정하면 튕겨져 나간다.
같이 있을 때, 나로 존재하는 것 애정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미칠듯이 행복해하는 것 아주 매우 너무 애정한다.
겉으로는 잘 휘어지는 덩굴 식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숲 전체였고,
숲 안에는 햇빛도 있고 물도 있고 칼도 있어서
생각보다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됨.
자기 무게 중심 단단하고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자유로운 사람 환영.
단, 삶의 해상도가 확 올라갈 수 있음.
나는 유연하지만 결정권을 넘기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지만 구조 없는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하면 오래 키우지만, 성장이 끝났다고 판단하면 떠난다.
나는 느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해할 때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