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하지 않은 결정에 나는 헌신하지 않는다

관계는 무엇으로 실재하는가.

bystephanette
나는 결정권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어디에 시간을 쓸지, 언제 기다리고 언제 떠날지를 내가 정하고 싶다. 결정을 하려면 정보가 있어야 한다. 정보가 있어야 선택지가 생기고, 그래야 비로소 정할 수 있다. 그래서 결정권은 사실 정보에서 시작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여행을 가는 것은 상대의 결정이다. 출장을 가는 것도, 혼자 있고 싶은 것도, 다른 일정이 생기는 것도 상대가 결정할 일이다. 나는 그것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결정이 내 일정과 관계에 영향을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가 한동안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나는 내 쪽의 결정을 할 수 있다. 기다릴지, 다른 약속을 잡을지, 만남을 기대하지 않을지, 이 관계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둘지. 내 결정을 내가 하려면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원했던 것은 상대의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아니었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공유받는 일이었다.


정보. 선택지. 결정.

이 세 단계 중에서 첫 번째가 빠지면 뒤의 두 단계도 사라진다.


누군가가 "네 결정은 네가 하면 되잖아."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 그런데 내가 결정하려면 먼저 알아야 하잖아."

예전에는 이런 상황을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서운함. 기대. 무시당했다는 느낌.

조금 더 들여다보니 그보다 구조의 문제다.


관계에는 각자 자기 삶을 운영하는 영역이 있고, 둘이 겹치는 영역이 있다. 각자의 삶은 각자 결정하면 된다. 다만 겹치는 영역에 영향을 주는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서로가 각자의 삶을 계속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통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장기간 부재 같은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관계라면

나는 이미 그 관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러니까 내게는 그런 정보를 알려달라고 다시 요구하는 일 자체가 조금 이상하다. 그것은 협상해야 할 세부 규칙이 아니라 관계라고 부르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 사람의 부재가 내 일정과 우리의 만남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그 사실은 자연스럽게 공유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아, 이 사람의 실제 삶의 운영 안에 나의 자리는 없구나."


그래서 때로 "왜 나를 빼고 정했어?" 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그 사람의 결정을 내가 같이 해야 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결정에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결정이 내 삶에 영향을 준다면 내 쪽의 결정을 할 수 있게 정보는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정보조차 없었다면 나는 이미 하나의 답을 받은 셈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하지 않은 기대는 잘못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처음부터 계약서처럼 설명할 수는 없다.

"장기간 자리를 비울 때는 알려주세요."
"다음 만남의 윤곽은 공유해주세요."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없다면 말해주세요."

이런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규칙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관계라는 말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전제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상대가 그것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이것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다시 묻기보다

그 사람과 내가
관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란 무엇일까.
관계의 실체란 무엇일까.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는 악의가 아닐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자기 삶은 자기가 운영하고, 필요할 때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는 각자 독립적으로 살아가더라도 공유되는 영역에 영향을 주는 정보는 서로 교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둘 다 자유를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다만 자유를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

한쪽은 각자의 영역은 각자가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각자의 영역을 각자가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후자다.

나는 선택권을 잃는 상황에서 가장 분노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결정에
나는 헌신하지 않는다.

결과가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결정의 과정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상대가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가 아니다.

나도 그가 자유롭게 결정하고 살기를 바랐다.

문제는 그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내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정보가 사라졌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것은 통제당했다는 느낌보다

관계의 당사자에서 빠져 있었다는 감각이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관계의 실체는 없다는 감각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자리에서 밀려나는 느낌.
무시당하는 느낌.
같은 인간의 자리 이하로 떨어지는 느낌.

그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결정권은 누가 허락해준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가 있을 때 생긴다.


상대가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숨기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도 자유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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