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들꽃이고, 너는 사이프러스다

내가 들꽃이라고 해서 타인도 그런 것은 아니다.

bystephanette

사주원국을 보고 있었다.

미래를 점쳐보기 위함은 아니다.

나는 어떤 성향인지 알아가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무다.

그리고 불에 대해서 생각했다. 불 속에 있는 금속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나무이자 숲이다. 그러니, 화염 속에 녹아버리고 있는 금속에 대해 내가 아무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려고 공부를 할 뿐.


갈등을 겪거나

이별을 하거나

큰 변동이 있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어렴풋이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사람은 왜 그러지?"

그것은 나의 자리가 아니다.




가보르 마테의 강연을 들었다. 트라우마, 중독, 스트레스와 인간의 정서적 발달을 연구하고 대중적으로 설명해 온 헝가리계 캐나다 의사이자 작가다. 그는 2026년 Jay Shetty의 On Purpose 인터뷰에서 토머스 머튼을 언급하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보고 판단하는지,

우리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산다.”


그는 이 현상의 뿌리를 어린 시절의 ‘보이고 싶은 욕구’와 연결한다. 아이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처음 자신을 인식한다. 부모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못하면, 아이는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이 자기 인식의 기준이 되는 순간, 나는 내 삶을 사는 대신 타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나를 관리하며 살게 된다.


토머스 머튼은 가톨릭의 트라피스트회 수도자이자 사상가이다. 그의 바카라,《No Man Is an Island》서문에 관련 글이 나온다.


인간은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바카라임져야 한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고, 나 역시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 이름이나 번호를 붙여줄 수는 있지만,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말해줄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당신 자신이 내면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역설적인 성향도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그들처럼 살아가면서 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삶에 대해 내놓은 잘못된 해답조차 너무 쉽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사람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모두 타인의 머릿속에서 답을 구하는 질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남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먼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의 성향이 들꽃이라면,
사이프러스 나무에 대해서도 들꽃의 관점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온 세상의 천지 만물이 들꽃이라도 된다는 듯이.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내가 그러니 남도 그러할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때때로
타인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조금 더 나아가면
타인의 행동에 상처받고,
지레짐작하고,
마침내 그 사람을 규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라 확정할 수 없다.


자신이 들꽃임을 이해하면,
비로소 타인이 사이프러스 나무임을 이해하게 된다.


“너는 왜 흔들리지 않아?”
“너는 왜 꽃을 피우지 않아?”
“너는 왜 꽃잎이 지지 않아?”


그가 왜 들꽃이 아닌지를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들꽃이다.

애써 들꽃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그러하다.
태어난 성향과
존재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들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이프러스가 사이프러스인 것도
조금은 "그렇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말할 수 없이 큰 기쁨과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다만
남의 머릿속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느라
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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