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감각의 호사

아주 구체적인 행복의 조건에 대하여

bystephanette

나의 행복은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내가 직접 비교하고 가장 좋은 것들을 고르고

"이건 내 거다."라고 결정했을 때의 만족감이다.

내 선택이 정확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따라온다.


나의 행복은 "손 맛"이다.

OLED TV를 모니터로 쓰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키보드가 더 행복하다.

손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도구라니.

손가락은 한계를 모르고 빠르게 달린다.

액상아크릴 욕조 같은 것이다. 몸 전체가 물성과 온도를 느낀다.

내 행복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손에 닿는 감각이다.


나의 행복은 "세계에 개입해서 바로 반응하는 경험"이다.

키를 타격하고 반발력을 느낀다. 글자가 빠르게 찍힌다. 다이얼을 돌리면 화면이 움직인다.

매끈거리는 청소솔을 들고 표면의 더러움을 쓸어낸다. 뽀득해진다.

손을 움직여서 달라지는 과정 자체에서 오는 행복이다.

반응의 의외성은

행복을 증폭시킨다. 놀람과 감탄 같은 것이다.


나의 행복은 "기다림"이다.

충동구매의 도파민보다

욕망을 숙성시키면서 천천히 키워나간다. 그리고 정확하게 획득한다.

아주 정밀하게 타깃을 정해나가고 나는 그것을 가진다.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점점 더 만족스러워진다.


나의 행복은 "접촉의 질"이다.

적게 가져야 행복한 것도 아니고,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손이 자주 닿는 곳들을 마음에 들도록 바꾸는 것이다.
넓은 여백에 아주 딱 마음에 드는 생활용품 하나.


나의 행복은 "비밀"이다.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니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외부의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옷이나 장신구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은 이미 지나갔다.

타인의 시선에도 적당한 수준만 한다.

아무도 몰라도 나 혼자 매일 행복해지는 것들이다.
사적인 감각의 호사라고 하자.


나는 언제 행복한지 생각했다.

그 역은 불행의 조건일까.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참고,

다른 사람의 기준 때문에 나를 스스로 줄이고,

설명 없이 기다리고,

선택하지 못하고,

쓰지도 않는 물건이 내 공간에 남아 있을 때.


생각해 보니,

나의 행복은 에너지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구조다.


나는 오랫동안 몰입과 성취에서 행복을 맛보며 살았다.

일을 하고, 해내고, 버티고, 인내하고, 참고, 바카라임지고

그러나 지금 발견하는 행복들은 전혀 다른 축의 행복들이다.


이런 자잘한 것들로

이렇게까지 행복해질 줄이야.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다 때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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