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세척기 두 대와 싸리비 한 자루

글쓰기를 하고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bystephanette
불편을 참는 데 삶을 쓰기보다,
구조를 고쳐서
다시 놀러 가고 싶은 사람.


이게 나다.


글쓰기를 했다.

오래간만에.

역시 사람은 마감이 있어야 일을 한다.

아니, 일을 미루고 글쓰기를 하며 논다.


나는 감각적이고 문학적인 인간은 아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문제해결에 골몰한 인간이다.


왜 이 시스템은 이 모양이지?
핵심 제약은 뭘까?
그럼 그 제약을 없애면 되잖아.


암묵적인 규칙

그런 것을 깨는 걸 애정한다.


문제의 핵심을 찾는다.

그걸 해결한다.


식기세척기 두 대가 그렇다. 처리량이 부족하다. 그러면 두 대를 놓자.


에스프레소 머신은 9 bar 압력이면 된다. 보일러도 펌프도 포터필터도 다 의미 없다. 실린더를 연결하고 공압으로 한다. 이거 괴물 같은데.


이 기계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 삶을 좀먹는 문제는 무엇인가?

내 삶에서 설거지를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린다.
꼭 필요한 것들은 충분히 확보한다.


나는 청소기 애정한다.

유선 밀레 청소기도, 무선 핸디형 청소기도 다 있다. 로봇 청소기도 한 때 있었다. 무선 물걸레 청소기도 있다. 습식 청소기도 사고 싶었다. 청소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주로 사용하는 것은 싸리비다.

걸려있는 긴 싸리비는 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알록달록한 끈으로 묶여 있는 모양이 아주 마음에 든다.


원목 너도밤나무 봉에 달린 밀대도 좋아한다. 밀대에 쓸 일회용 부직포를 싸게 팔길래 박스채 샀다. 말하자면 창고 세일이다. 한 박스에 만원밖에 안 했다. 일 년은 거뜬하다.


새벽에 싸리비나 밀대의 원목 봉이 손에 닿는 촉감은

나를 상당히 행복하게 한다.


그러니까

현재 스코어,

식기세척기 2

청소기 0

싸리비 1

밀대 1

부직포 1박스


삶을 애정하는 것들로 채운다.
채우는 방법은 엔지니어처럼 판단한다.


복잡한 삶을 충분히 이해한다.

구조를 분석한다.

그리고 단순화한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다른 적절한 단어는 잘 모르겠다.


시스템 교체에는
기존의 관습은 모두 의심해 보자.


진리는 늘 단순하다.

Less i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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