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의 일부가 흐려지면 마음은 편안해진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4살인가.
사촌오빠가 셋 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처럼 생겼다. 지금도 그렇다. 매우 훌륭하시다.
평생을 공부만 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사촌오빠들은 나를 무척 귀여워해줬었다.
그래서 같이 해수욕장을 가거나 놀게 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오빠들이 보기에 나는 꼬꼬마였을 것이다. 알록달록한 튜브들과 수영복을 조르르 널어놓고 모여 있는 사진은 아직도 남아있다. 아빠는 2층에서 캐논 수동 카메라를 꺼내 들고 우리를 촬영했었다. 나는 오빠 위에 목마를 타고 있는 언니가 부러운 표정으로 오빠 곁에 기대 있었다.
다들 신나서 올려다보는 얼굴.
둘째 오빠를 무척 좋아했다. 오빠에게는 비밀이다.
나는 사촌오빠의 검은 뿔테 안경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도 쓰고 싶어졌다.
빙글빙글 어지러운 안경 말고 내 눈에 딱 맞는 선명한 안경을 써보고 싶었다.
어두운 방에서 작은 글씨를 무지하게 읽었다.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있기도 했다.
눈에 나쁘다는 짓은 모조리 다 했다.
그리고 언제였지. 안경을 쓰게 되었다.
당연히 검은 뿔테 안경이다.
얼굴이 가려지는 것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내 시선도 적당히 뿔테의 두께만큼 맹점이 생긴다.
시야의 일정 부분이 흐려지면 마음은 아주 편안해진다.
그러나 안경 자체는 매우 불편하다.
두통이나 안경코 부분에 접촉성 피부염이 생기거나 아프다.
코가 눌리면 숨이 안 쉬어진다.
그렇다. 나는 숨을 잘 못 쉰다. 어쩌면 나의 모든 문제는 호흡을 제대로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산소의 부족. 코 수술을 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코의 8할은 구조적으로 막혀있다.
새벽 조깅이라도 할라치면 숨을 쉴 때마다 코가 고통스럽다. 호흡은 차가운 불길처럼 점막을 긁어댄다.
그래도 수술은 싫다.
마취를 하면 그대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그냥 비합리적인 생각일 뿐이다.
어쨌든, 눈이 잘 보이는 대신 나는 호흡을 제대로 못한다. 뭐가 더 나을까.
나는 키스를 못한다.
입이 막히면 숨을 못 쉰다. 그러면 어지럽다.
아,
원래 키스를 하면 어지러워지는 건가.
나는 알지 못한다.
코로 숨을 쉬지 못하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분야다.
오늘 안경점을 갔다.
안경코가 맞지 않아 안경케이스 속에서 잠들어 있던 뿔테 안경,
안경코가 떨어져 나가서 방치해 둔 반뿔테 안경,
안경코가 작아서 두통이 생기는 티타늄 안경 - 가벼워도 무게를 받칠 코의 면적이 작으면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안경테가 틀어진 안경코가 일체형인 뿔테 돋보기.
거기에 콘택트렌즈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어째서 안경을 쓰는 것보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돋보기를 쓰는 것이 더 바카라 읽기에 편할까.
어쩔 수 없이 코가 일체형인 뿔테 안경을 선호한다. 두통이 적다.
두통이 생기는 이유는 눈이 나빠서다. 여러 번 압축을 해도 렌즈 무게가 상당하다.
안경을 벗으면
내 손이 보이지 않는다. 윤곽은 전혀. 대충 형체만 보인다.
좋은 점도 있다.
밤에 불빛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번진다.
도구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내가 보는 세상은 엄청나게 번쩍이고 윤곽은 여러 가지 곡선으로 흔들리고 화려하다.
고 3 때 두통으로 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알레르기로 렌즈는 착용하기 어려운 눈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줄기차게 써왔다.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것보다는 간지러워도 잘 보이는 컨택트 렌즈가 낫다.
눈 수술은 안 했다.
1~2%의 실패확률이 무섭다.
어째서냐고 한다면,
병원에서 늘 말하는 1%의 확률이 내게는 늘 실현되었었고,
내가 당첨되면 그건 1%가 아니라 100%이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나는 겁이 많은 인간인지도 모른다.
자기 눈동자 사이의 거리와 얼굴 모양과 크기에 맞는 안경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안경을 찾으면 정말 편하다.
그리고 보기에도 완전히 얼굴이 달라 보일 정도로 멋있어진다.
안경다리의 안쪽에는 숫자가 쓰여있다.
나는 그게 뭔지 궁금했었다.
자기 얼굴에 맞는 프레임의 크기다.
예를 들면,
50 □ 19 - 145
렌즈폭 □ 브리지폭 - 템플길이
50 = 렌즈 가로폭(mm)
한쪽 렌즈의 가장 넓은 가로길이.
얼굴에서 안경이 커 보이거나 작아 보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다.
19 = 브리지 폭(mm)
두 렌즈 사이, 즉 코에 걸리는 부분의 폭.
코가 좁으면 작은 숫자, 코가 넓으면 큰 숫자가 편하다.
145 = 템플 길이(mm)
안경 렌즈가 있는 앞부분에서 귀 뒤까지 이어지는 다리 길이.
지금 쓰는 안경이 49□18-145인데 얼굴에 아주 잘 맞는다면
새 안경을 살 때도 대략 렌즈 48~50 / 브리지 17~19 / 다리 140~145 정도에서 찾으면 된다.
정말 잘하는 안경점에 가면, 눈동자 사이의 거리와 얼굴의 사이즈를 측정해서 알려준다.
그런 곳은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든다.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안경을 갖고 싶다.
코가 아프지 않고,
두통이 생기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눌리거나 호흡이 가빠지지 않고,
뒤틀리지 않고,
잘 보이는 안경.
그래서 나는
콘택트렌즈를 낀다. 돋보기와 함께.
사족
해야 할 일이 있다. 서류 작업이다. 정말 하기 싫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건 안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