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는 커피를 애정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솔메이트만 해도 커피를 입에도 안대는 부류였다.
그로 인해 나는 맥주를 마시고,
그는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는 정도다.
맥주 계보를 읊는 것을 듣는 재미가 있다.
온갖 종류의 맥주들을 다 시음하게 해 주었으나,
나는 늘 같은 맥주를 애정한다.
맥주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맥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몸에서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 마시는 건 아니다.
술은 끊은 지 오래다. 요즘 마시는 맥주는 제로 알코올, 제로 당이다.
솔메이트는 커피를 마시기는 한다. 나는 그에게 커피 계보를 읊지 않는다.
내가 아는 걸 말하는 건 별로 재미가 없다.
솔메이트와 친한 이유는 그는 정관 격의 인물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더라도 그는 채팅창에 아주 많은 글을 쓰고서는 다 지우는 인간이다.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구분한다.
100가지 할 말이 있어도 안 한다.
주로 양보하고 참는다.
그가 화를 내는 경우에는
주변의 모든 이들은 그의 편이 된다.
내가 보기엔 평범한 인간의 레벨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실존하는 인물이니 대단하다는 생각은 한다.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이 구분되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아마도 전생에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다가 동방의 신이 애지중지하던 복숭아를 실수로 떨어트려서 이번 생에는 인간계로 떨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이 참 부럽기 그지없다.
나는 해야 할 말은 하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좋게 말해서 화끈하다고 하자.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다.
예외는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예외가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후회도 한다. 그러나 그냥 타고난 성향이다.
솔메이트가 정관의 성향이듯이.
나는 정관 격이나 그냥 덤덤히 따라가는 편은 아니다. 내가 확인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관의 성향이 나온다.
예를 들면,
솔메이트는 사람들이 예상하는 바가 있다.
"오토바이는 어디에 뒀어요?"라거나
"쓰리썸을 하면 어때요?"라거나.
솔메이트는 명상센터의 주지스님이다. 스님은 아니다. 이미지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를 잘 모르는 이들은
그가 매우 현생에 충실한
자유로운 영혼이라 추측한다.
그는 그렇게 응수한다.
"모르는데.
안 해봤는데."
잘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해도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못하는데."
못하지 않아도 그렇게 말한다.
그는 나서지도 않고,
혼자 속으로 계산하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다.
"난 평범한 인간인데."
그럴 리 없다. 그는 평범한 부류가 아니다. 차라리 내가 더 평범한 인간이다.
"내가 평범한 인간이지."
"니가 어딜 봐서 평범해?"
"나만큼 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평범하지."
"아닌데. 내가 더 평범한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승부는 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의 성향이 편하다.
굳이 생각을 할 것도 없고
신경을 쓸 것도 없다.
질문도 없다.
나도 궁금한 것이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나는 대충 흘려듣는다.
뭔가 각자 바쁘다.
연락이 오면 오는 것이고
안 오면 안 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죽을 때까지 연락 한 번 없어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그런 인물이다.
언젠가 오겠지라거나
무슨 일이 있나라거나
그런 일체의 생각 자체가 없어도 되는 인물이다.
아, 그는 정확한 타이밍에 필요한 말을 정확하게 한다.
그랬군.
그래서 질문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생각할 것도 없다.
예를 들면, 놀이터에서 종일 놀다가 뉘엿뉘엿 해가 진다.
그는 말한다.
"릴리, 집에 가서 밥 먹어. 해진다."
그런 식이다.
그래서 나도 물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그냥 타고난 대로 살 수밖에.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참,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넌 어떤 커피 좋아해?"라고.
내가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난 사람들과 노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