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그걸 자꾸 잊어버린다.
한 집단에서 특정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들이 제각각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다.
내가 사고하는 방식대로
타인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거라 지레짐작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생각 자체도 평소에는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살인사건 추리물을 평생 봐온 사람이
로맨스만 보던 사람을 만나서
영화 코멘터리를 제작한다고 생각해 보자.
전자는 동기, 단서, 위험 신호를 보고,
후자는 감정, 오해, 관계의 흐름을 볼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그리고 미래 예측도 전혀 다르다.
내가 말하는 낯선 사람은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같은 장면을 전혀 다른 서사로 읽는 사람,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오래 이야기하고 나면
내 세계의 테두리가 조금 보인다.
내가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가 오래 살아온 한 장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다른 장르의 사람과 깊이 대화하는 일이 더 드물다.
추석이다.
친척들을 만나면
그들의 장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심지어 한 집에서 자랐어도
전혀 다른 장르를 살아온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