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아마 교운기여서 아닐까.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시기다.
그 이유는 내가 가진 기본 전제 때문이다.
나는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현실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상대라는 거울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는 그를 만나서
내 취약성을 드러내겠다고 결정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그는 모르겠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가 갑자기 용감해져서도 아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더 어릴 때 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 제각각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나에게는 그런 시기였었다.
취약성을 드러내겠다는 것은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그 관계가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다쳤을 때, 그것들이 반복되었을 때,
나는 상처받은 나는 어떤 행동을 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순간들에서 내가 받는 타격과 압박감과 고통의 무게에 따라
나는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했다.
당연히 편안한 상황들은 아니다.
자신의 낯선 모습을 대면하는 것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현재 시점의 나는
과거 시점의 나를 관찰한다.
나의 관점은 현재 시점의 나에 대해 알려준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생겨나는 질문들에 답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궁금한 것들을 찾아보고 있다.
과거의 나를 보는 행위는
현재의 나를 폭로한다.
그 당시 순간순간 들었던 내 감정과 생각들은
현재의 것과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은 나의 여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역동적이고도 격렬하고도 지지부진하고도 에너지가 많이 들기도 한다.
세계의 모습은 자기 내면의 반영이다.
관계를 통해 나는 나를 알아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대극의 통합이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