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이후 일어나는 여러 과정

분노, 슬픔, 불안, 자기비난, 체념, 혐오, 경멸, 무감각, 애착 철수

bystephanette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과정이다.

이는 분노 이후 슬픔, 불안, 자기비난, 체념, 혐오, 경멸, 무감각, 애착 철수, 회복까지 이어진다.


분노는 화나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화가 난 상태에서 상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될까.

사과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달라지지도 않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 분노는 어디로 갈까.


누군가는 혐오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이 궁금했다.

감정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이 발생한 조건이 계속되면 점점 그 상황에 적응한다. 상대를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기대하는 것이 달라지고,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이 변화에는 하나의 정해진 순서가 없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고, 어떤 사람은 상대를 의심한다. 싸우는 사람이 있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고 얼어붙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에게도 이 반응들은 시기마다 번갈아 나타난다. 그럼에도 여러 심리학 이론을 함께 놓고 보면 반복되는 관계적 상처 뒤에서 일어나는 변화에는 일정한 구조가 보인다.


처음에는 사건이 있다.

약속을 어겼다. 무시했다. 거짓말을 했다. 연락하지 않았다. 모욕했다. 필요한 순간에 사라졌다. 설명해야 할 일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먼저 그것의 의미를 평가한다.

실수였는가. 우연이었는가. 나를 향한 행동이었는가. 피할 수 있었는가. 상대에게 바카라임이 있는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내가 무엇인가를 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가. 감정평가이론에서 감정은 이런 판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같은 사건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만든다.

누군가 일부러 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슬프다.

앞으로 다시 일어날 것 같으면 두렵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죄바카라감이 생긴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받아들이면 수치심이 생길 수도 있다.

상대를 가까이 두는 것 자체가 위험하거나 불쾌하다고 판단하면 혐오가 생길 수 있다.


한 사건에서 여러 감정이 동시에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가 나면서 슬플 수 있다. 사랑하면서 무서울 수 있다. 이해하고 싶으면서 도망가고 싶을 수 있다. 다시 만나고 싶으면서 만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감정은 논리적인 투표를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감정 체계가 동시에 움직인다.

분노는 그중에서도 행동성이 강한 감정이다. 부당한 일이 일어났고 누군가에게 바카라임이 있으며 상황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느낄 때 분노는 쉽게 발생한다. 그래서 분노한 사람은 움직인다. 묻고, 따지고, 항의하고, 설명을 요구한다. “왜 그랬어.” 이 질문에는 아직 관계가 들어 있다. 답을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가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답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보고 있다.


분노에는 기대가 남아 있다.

그래서 관계에서 분노는 때때로 수정 요구의 형태를 가진다.

다시는 그러지 마.

설명해 줘.

사과해.

약속을 지켜.

나를 그렇게 대하지 마.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관계는 다시 조정될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설명하고, 사과하고, 이후의 행동을 바꾸면 분노는 내려간다.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한다.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보다. 신뢰는 완벽하게 상처받지 않는 상태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경험하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갈등의 존재보다 수선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수선되지 않는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한 번의 사건이었다.

두 번째가 생긴다.

세 번째가 생긴다.

사람의 뇌는 반복되는 사건을 하나씩 따로 보지 않는다. 공통점을 찾기 시작한다.

패턴이 만들어진다.

“또.”

이 짧은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관계를 보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번 행동만 보고 있던 사람은 이전의 행동까지 함께 기억한다.

하나의 사건은 과거의 여러 사건과 묶인다.

행동 하나에 대한 판단이 관계 전체에 대한 판단으로 커진다.


“이번에 왜 그랬지?”

라는 질문은

“이 사람은 항상 왜 이러지?”

로 바뀐다.


여기서부터 예측이 시작된다.

인간에게 예측은 중요하다.

어떤 일이 벌어진 뒤 대응하는 것보다 미리 예측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에 연락이 끊겼다면 또 끊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에 거짓말을 했다면 다음 말도 확인하게 된다.

전에 화를 냈다면 표정이 조금 달라지는 순간부터 긴장한다.

전에 중요한 순간에 사라졌다면 다음 중요한 순간에도 기대를 낮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몸은 먼저 준비한다.

이것이 불안으로 가는 길이다.


분노가 현재의 침해에 대한 반응이라면 불안은 미래의 침해를 준비한다.

상대의 말투를 읽는다. 답장의 길이를 본다. 얼굴의 작은 변화를 살핀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찾는다. 위험을 일찍 발견하기 위해 주의가 상대에게 집중된다.

때로는 과각성 상태가 된다.

별일 아닌 신호에도 몸이 크게 반응할 수 있다. 연락 알림만 울려도 긴장하고, 만남을 앞두고 속이 불편하고, 상대의 표정을 계속 확인한다.

머리는 아직 판단 중인데 몸은 이미 학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슬픔도 생긴다.

분노가 “이것을 바꿔라”라고 요구한다면 슬픔은 잃어버린 것을 바라본다.

내가 기대했던 관계.

믿었던 사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미래.

상대와 함께 있을 때의 나.

사라진 것은 사람 하나뿐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관계에는 미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함께 하려고 했던 일, 나누려고 했던 시간, 상대에게 기대했던 역할, 그 관계 안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관계의 상실은 실제 이별보다 먼저 시작되기도 한다.

사람은 아직 옆에 있는데 이미 애도하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이 관계가 내가 기대했던 곳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기다려도 원하는 답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슬픔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온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자신을 향해 돌아선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나.”

“조금만 참았으면 됐나.”

“내가 잘못 이해했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비난은 묘한 기능을 한다. 내가 잘못했다면 내가 달라지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서 자기비난은 고통스럽지만 때로 통제감을 준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견디기 쉬운 순간도 있다. 이때 자신의 기준을 조금씩 낮출 수 있다.

원래 싫었던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상대의 사정을 대신 설명한다.

요구하지 않기로 한다.

질문을 줄인다.

불편해도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들어 있다.


그런데 자신의 행동을 계속 바꿨는데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으면 또 다른 학습이 시작된다.

“내가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통제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무너지는 지점이다. 학습된 무기력 연구가 다루는 핵심도 이 부분이다. 반복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불쾌한 상황을 경험하면 이후에는 통제할 가능성이 생겨도 행동하려는 동기가 떨어질 수 있다. 사람에게서는 훨씬 복잡한 인지적·슬롯적 조건이 개입하지만, 반복되는 통제 실패가 행동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본 구조는 중요하다.


그러면 분노의 형태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격렬하게 싸웠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는다.

설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알아서 해.”라는 말이 나온다.

겉으로 보면 평온해 보인다.

실제로는 관계에 투입하던 행동이 줄어든 상태일 수도 있다.


여기서 체념이 생긴다. 체념은 상황이 좋아졌다는 뜻을 품고 있지 않다.

변화를 기대하는 비용이 너무 커졌다는 뜻에 가까울 수 있다.

기대하면 실망한다.

요구하면 거절당한다.

설명하면 또 설명해야 한다.

싸우면 지친다.

사람은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그다음 갈림길에서 혐오가 생길 수 있다. 혐오는 본래 강력한 회피 감정이다. 상한 음식에서 몸을 떼듯이 인간은 불쾌하거나 위험하다고 학습한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만들려 한다.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저 행동이 싫다.” 라는 판단이 반복된 경험을 거치면서

“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싫다.” 는 감각으로 넓어질 수 있다.


이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분노는 상대를 향했다. 혐오는 거리를 만든다.

분노했을 때는 상대와 싸우기라도 했다. 혐오가 강해지면 싸우는 것조차 싫어진다.

만나기 싫다.

말하기 싫다.

설명하기 싫다.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것이 싫다.

몸이 닿는 것이 싫다.

연락이 오는 것도 싫다.

상대에 대한 심리적 평가가 신체적 회피와 연결될 수도 있다.


여기에 경멸이 들어오면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경멸에는 존중의 붕괴가 들어 있다.

“나는 저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에서 더 나아가 “나는 저 사람의 판단과 태도를 존중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만들어진다. 존 고트먼의 관계 연구에서 경멸이 지속적인 관계 악화와 강하게 관련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판, 방어, 경멸, 정서적 철수 같은 상호작용 패턴은 장기적인 관계 안정성과 연결되어 연구되어 왔다. 특히 경멸은 상대를 아래에 두는 태도와 결합하기 쉽다.

존중이 사라지면 관계의 협상도 어려워진다.

협상에는 상대가 말할 가치가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경멸이 깊어지면 상대의 설명을 듣고 싶은 마음부터 사라질 수 있다.

“무슨 말을 하든 똑같을 것이다.”

이런 예측이 생긴다.


여기서 다시 갈라진다.

어떤 사람은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동안 받은 상처를 돌려주고 싶어진다. 상대도 자신이 느꼈던 것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심이 나타날 수 있다. 복수에는 공정성을 회복하려는 심리가 섞여 있을 수 있다. 나는 고통받았는데 상대는 아무렇지 않은 상황을 불공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반대로 완전히 물러난다. 대화량이 줄고, 공유가 줄고, 자신의 중요한 이야기를 상대에게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만 말한다. 감정적인 정보가 차단된다. 이것이 정서적 철수다. 존 가트맨(John Gottman)의 연구에서 벽을 치듯 대화를 끊는 반응(stonewalling)이라고 부르는 반응도 이런 철수의 한 형태다. 갈등 상황에서 상호작용 자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애착 연구에서는 또 하나의 설명을 제공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안정과 도움을 요청했는데 반복해서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면 애착 행동을 억제하는 방향이 나타날 수 있다.

기대하지 않는다.

의지하지 않는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혼자 해결한다.

관계에 필요한 심리적 거리를 늘린다.

이런 방식은 애착의 비활성화와 연결해서 설명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계에서 사람에게 아직 감정이 많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는 않다.

사랑했던 기억은 있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상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다시 관계를 만들 생각은 없다.

감정과 행동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애착은 기억과 학습의 체계이기도 해서 결정 하나로 즉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를 끝낸 뒤에도 생각이 난다.

꿈을 꾼다.

옛날 일을 떠올린다.

갑자기 화가 난다.

좋았던 순간이 생각나서 슬프기도 하다.

이것이 반드시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뇌가 오랫동안 중요하게 처리했던 대상을 다시 처리하고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감정의 강도가 떨어진다.

처음에는 상대의 모든 행동에 의미가 있었다.

왜 저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후회하는지 궁금했다.

다시 연락할지 궁금했다.

어느 순간 질문의 수가 줄어든다.

이것은 꽤 중요한 변화다.

관계에서 심리적 철수는 연락을 끊는 순간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해석을 중단하는 순간에도 일어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더 이상 내 의사결정에 중요하지 않아진다.

여기서 무감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무감각은 두 가지 모습을 가질 수 있다.

너무 많은 자극 뒤에 일시적으로 감정이 닫힌 상태일 수 있고,

충분히 관계에서 멀어진 뒤 감정의 강도가 실제로 낮아진 상태일 수도 있다.

둘은 겉으로 비슷해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나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감정을 느낄 여력이 없어 잠시 차단된 경우에는 시간이 지난 뒤 슬픔이나 분노가 다시 올라올 수 있다.

관계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실제로 줄어든 경우에는 상대를 떠올려도 이전만큼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후자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무관심이 된다.

무관심은 강렬하지 않다.

그래서 극적이지도 않다.

상대를 미워해야 할 이유도 줄어든다.

무엇인가를 증명할 이유도 없다.

사과를 받아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도 약해진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낼 필요도 없다.

한동안 자신의 심리적 세계를 차지했던 사람이 점점 주변부로 이동한다.

기억은 남는다.

의미도 남을 수 있다.

사람은 멀어진다.


여기서 또 하나의 길이 열린다.

회복이다. 회복은 모든 일을 좋게 해석하는 작업일 필요가 없다.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배치하는 작업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나는 그때 무엇을 느꼈는가.

어떤 신호를 무시했는가.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다음에는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무엇을 더 빨리 말할 것인가.

어떤 행동을 신뢰의 증거로 볼 것인가.

어떤 행동이 반복되면 관계에서 나올 것인가.

이 질문들이 생긴다.


처음에는 모든 관심이 상대에게 향해 있었다.

왜 그랬어.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회복이 진행되면서 질문의 주어가 바뀐다.

나는 무엇을 원했는가.

나는 무엇을 견딜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

나는 다음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통제의 위치가 돌아온다. 학습된 무기력 연구에서도 통제 가능성을 다시 경험하는 것은 중요한 주제다. 최근의 연구는 통제 불가능성만큼이나 통제 가능성을 학습하는 과정과 그 효과에도 관심을 둔다.


관계적 상처 이후의 과정은 하나의 선으로 그리기 어렵다.

분노에서 화해로 갈 수 있다.

분노에서 슬픔으로 갈 수 있다.

슬픔에서 다시 분노가 올라올 수 있다.

불안으로 갈 수 있다.

자기비난으로 향할 수도 있다.

계속 싸울 수도 있다.

체념할 수도 있다.

혐오와 경멸을 거쳐 멀어질 수도 있다.

감정이 닫힐 수도 있다.

오랫동안 미워하다가 어느 날 아무 관심도 없어질 수도 있다.

떠난 뒤에 비로소 슬픔이 시작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는 이 모든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과정은 이런 모습에 가깝다.

사건이 생긴다.

그것을 해석한다.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한다.

상대를 움직여 본다. 자신을 바꾸어 본다. 기다려 본다. 다시 상처받는다. 패턴을 발견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 경계한다. 기대를 낮춘다. 통제할 수 있는지 시험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면 지친다.

사람에 따라 이렇게 나타난다. 체념한다. 혐오한다. 경멸한다. 떠난다. 몸부터 멀어진다. 마음부터 닫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상대에게 사용하던 에너지를 조금씩 회수한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상대에 대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왜 그 사람을 사랑했는가도,

그 사람은 왜 나에게 그랬는가도,

그 사람이 결국 나를 사랑했는가도 아닐 수 있다.


조금 더 오래 살아남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 경험 이후 나는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내가 다시는 협상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

다음에 같은 신호가 나타났을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한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보다 더 깊은 변화는 여기에서 생긴다.

관계를 잃으면서 사람을 배우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경계를 알게 된다.


상처 이후 일어나는 여러가지 감정적인 일련의 과정과 변화에 대한 글이다.

통제 불가능성에서 일어나는 행동 감소는 학습된 무기력 연구, 경멸·정서적 철수는 가트먼 계열의 관계 연구 등을 살펴보았다. 상대가 화를 내던 시기는 관계의 악화만은 아니다. 뒤늦게 그때가 오히려 관계가 살아 있던 시기였다는 역설을 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행동을 고치면 해결될 수 있었던 단계가 지나가고, 사람 자체가 회피 자극이 되는 순간이 등장한다. 상대에 대한 해석을 중단하는 순간에도 심리적 철수가 일어난다. 현대 연구에서는 학습된 무기력을 인간관계 전체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개인의 귀인·통제감·환경 차이를 함께 본다.


관계 패턴은 어떻게 학습하게 되는가.
그리고 언제 더 이상 상대에게 가지 않게 되는가.

분노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반복해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운다.
멀어지고,
기대하지 않고,
묻지 않는다.

상처의 종결을 언제나 분노의 소멸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 순간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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