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나는 뭔가 요구사항이 없다.
나는 직접 대립해서 뭔가 말하거나 요구하는 성향이 아니다.
몰라서도 아니고
말을 못해서도 아니고
그런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성향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침묵하거나
낯설게 행동해서 거리감을 티를 내거나
말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방식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런 자체가 불편하다.
“이렇게 해줘.”
“저렇게 해줘.”
“연락은 이 정도로 해줘.”
“나를 이렇게 대해줘.”
그런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상대를 조정하려는 태도도 거의 없다.
나는 주로 상대에게 맞춰준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맞춰주고
내게 불편한 일이 생겨도 그러려니 한다.
정말 친한 이들에 대해서는 심각한 상황이 되어도 그 사람 입장에서 받아주는 편이다.
“설명해라.”
“변해라.”
“나를 안심시켜라.”
“다시 와라.”
그런 말들은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본 적은 거의 없다.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행복했던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내 임계치가 매우 높아서 그런 것도 있다.
나는 내 마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인 것도 같다.
상대가 그 사람 그대로 내 곁에 있는 것을 애정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장점도 단점도 다 그렇구나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했으니까 상대도 나에 대해서 그렇게 할거라 기대도 거의 안한다.
숲에는 온갖 것들이 다 있다.
사과도 있고, 지네도 있고, 썩어가는 나뭇잎도 있고, 물도 흐르고, 햇살도 비친다.
나는 그래서 숲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나는 내 숲에 사람을 들이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다.
그러는 이유는 억지로 뭔가를 해야해서 하는 것이 불편하다.
편안한 상태라면 갑자기 친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번거롭고 불편한 자리에 있는 것이 힘든지도 모르겠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치약 뚜껑으로 싸운다거나
화장실의 휴지 걸어두는 방향으로 싸운다는 그런 것들은 나와는 다른 이야기다.
나는 화장실의 휴지는 반드시 앞쪽으로 휴지가 떨어지도록 걸고,
치약 뚜껑은 늘 닫아서 라벨이 앞으로 보이도록 각을 잡아서 제자리에 놓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에게 그걸 바라지 않는다.
휴지를 볼 때마다 치약 뚜껑을 볼 때마다 내가 다시 걸어둘 뿐.
나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싫어한다.
그럴 것이 있으면 차라리 내가 한다.
그런 것들은 별일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을 말로 해야할 때라고 생각하면, 정확히 하는 편이다.
상대가 응답성이 좋으면 좋다.
내가 그런 말을 거의 하지 않으니, 상대가 그걸 알아주면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다시는 안볼 것처럼 미친 듯이 싸워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싸우고 나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철칙이 있다.
싸운 것은 당일 해가 지기 전에 화해한다.
갈등을 해결하고 나면 다음날 아침이면 잊어버린다. 그냥 성향이다.
나는 회복탄력성이 다른 이들보다 심각하게 높다. 인내심도.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맞춤으로 좋아할만한 것들을 다 해준다.
화해의 시점에서 긴 대화를 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결해야하고 그런 것들을 미뤄야 한다면 좋아질 때까지 미뤄두는 편이다. 대화를 하는 것보다는 언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말이든, 상대에게 고치라고 하는 말이든 나는 말 자체의 효과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어려운 말을 길게 하는 것은 헤어지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할 뿐이다.
내가 하는 화해는 갈등을 분석하거나 설명하는 쪽이 아니다.
그냥 같이 즐겁게 논다. 그럴 수 있는 관계까지 만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화해다.
나는 왜 만나고, 왜 헤어지는 것일까?
나는 내 마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좋으면 만나고
불편하면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