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날 때 생각하는 것들
이런 말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다.
누군가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가 늘 하는 방식이다.
그것에 대해서 관련된 사람에게 길게 설명한 적은 없다.
발화는 목적을 이루면 된다고 생각해서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싶으면 이런 말이 좋다.
"헤어지자."
더 이상 뭐가 필요할까? 혹은,
"헤어지자. 마음이 이제 안 남았어."
그 이후에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은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을 하기도 하고 상대의 의견을 듣기도 하지만
이별을 말한 이후에 다시 결정을 번복한 적은 없다.
아, 번복한 적은 있다. 상대가 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했을 때.
나는 타인이 나로 인해 변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일이다. 그러니 다시 만나는 것도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만나기 전에는 이런 것들을 한다.
그 사람이 친구이든 연인이든 그 사람이 들어올 공간과 에너지를 미리 마련해 놓는다.
내가 생각하는 관계에 대한 바카라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상대에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억지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편도 아니다.
상대가 초대하면 가고, 머무른다.
그러나 가기 전에 그 사람이 내 내면에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보고 미리 정리한다.
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관계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나의 삶은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들은 거기서 파생된 결과물일 뿐이다.
내게 있어서 관계가 그렇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마다 관계의 무게는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한다.
그리고 상대를 대면하면 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느 정도의 사람이 될지.
더 정확하게는 감각한다고 하자.
낯선 곳에 초대된다.
머무른다.
반복된다. 좋으면 이어진다. 깊어진다. 그런 식이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낯선 곳에 초대된다.
분명 먼저 오라고 했다. 그래서 갔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
나는 손님인지, 지나가는 행인인지, 잠깐 들른 잡상인인지 모르겠다.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 무엇을 만져도 되는지, 언제까지 있어도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집주인은 가끔 나타나서 말한다.
“네가 와서 내 집이 완성됐어.”
“요즘 내가 너무 바빠.”
“나 아파.”
“네 얼굴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어.”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그런데 나는 여기서 뭘 하면 되는데?”
더 묘한 건 내가 제 발로 침입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초대를 받았다.
그러니 처음에는 당연히 초대한 사람이 이 공간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명이 없으니 혼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문은 열어도 되나.
저쪽은 왜 닫혀 있나.
방금 한 말은 무슨 뜻인가.
왜 어떤 날에는 가까운데 어떤 날에는 사라지나.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왜 생각이 많아지고, 관찰하고 분석하게 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해독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서 직접 곁에 있거나 대화를 하는 것 말고는 별 생각을 안 한다.
낯선 공간에서 길을 잃었으니까 지도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생각하면 아주 아이러니하다.
초대한 사람은 자기 집이 익숙하다.
그러니 자기는 길을 잃지 않는다.
나만 낯선 것이다.
내가 낯설 것이라는 것을 상대는 모를 수 있다.
상대는 자기 사정도 알고, 자기감정도 알고, 왜 바쁜지도 알고, 왜 말을 안 하는지도 자기 안에서는 알고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꽤 일관되고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상대는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나는 이 사람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감정을 지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모순되는 것 같지만 이런 생각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내부 정보가 하나도 없다.
보이는 건 간헐적으로 열리는 문과 몇 마디뿐이다.
초대한 사람은 감정의 깊이를 관계의 실재로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관계가 실제로 존재하려면 그 깊이가 둘 사이에서 확인 가능해야 할 수 있다. 말이든 행동이든.
상황, 시간, 바카라임, 현실적인 제약, 자기 방식 같은 것들이 한 쪽에서는 벽으로 경험될 수 있다.
신중함이나 현실적이라거나 그런 에너지는
관계가 막히면 거리, 지연, 침묵, 차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사람은 침묵 속에서도 관계가 계속 존재할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침묵이 길어질수록 관계 자체를 이해할 방법이 사라진다.
만남은 그걸로 유지 가능하지 않다.
애정의 표현 방식, 거리 조절, 예측 가능성, 관계를 말로 공동 구성하는 방식의 결이 맞아야 한다.
감정의 강도와 관계 유지의 안정성은 같은 것이 아니다.
대상이 있고 스며드는 방식의 사람은 대상이 있어야 스며들 수 있다.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읽으면서 자라는 사람은 빛과 방향이 있어야 어디로 가지를 뻗을지 정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에 처음 갔던 날이 떠오른다.
사무실은 백 명 이상이 앉아있는 넓은 곳이었고, 다들 각자의 일로 부산스러웠다.
나는 출입문에 들어가서 약간 당황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한참 온라인 게임을 다니면서 그곳은 너무나 편안한 곳이 되었다. 공간에 압도되지 않고, 거리낌이 없었다.
가끔 방문객이 오면, 처음 출근했던 날을 떠올리고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곤 했다.
그런 기분이다. 처음 간 공간에서 당황스럽고 뻘쭘하고 약간 불안한 그런 상태.
그 상황이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것들을 해도 여전히 그렇다면.
그래서 받았던 초대장을 찾아본다. 그런데 초대장이 없다.
기다린다. 설명이 없다.
화가 난다. 왜 불렀을까 생각해 본다. 별것 아닌가 보다.
그러면 그 공간으로는 갈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한 사람인가 보다.
상대를 만나기 전에 미리 준비할 시간.
초대장.
낯선 곳에 초대했으면 최소한 불은 켜놓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