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투명한 사람
유리처럼 투명한 아크릴 케이스를 애정한다.
좋은 아크릴은 정말 비싸다.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케이스들을 곁에 두었던 적이 있다.
층층이 칸이 쌓인 펜케이스,
완벽한 정사각의 소품 케이스,
반짝이는 낮은 펜 트레이.
아크릴 문진도 애정한다.
검은색 자개 무늬가 바닥에 깔려 있는 정사각의 벽돌바카라용 문진부터
동그랗고 바다의 물결이 보이는 반구형의 문진,
하얀 민들레 꽃씨가 들어 있는 동그란 문진.
모두 다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투명한 것들이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정말 애정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아이들이 갖다 쓴다.
그러라고 허락은 했지만
마구잡이로 물건들을 넣는 용도는 아니어서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편안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과도한 헌신은 하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서 나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향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불의 기운이 좋다.
사주 이야기다. 병화나 정화.
있는 그대로 투명하다. 딱히 자신을 가리지도 않고 뭔가 계산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는 마음이 편하다.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좋으면 좋은 대로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원하는 편안함은 그런 종류인 것 같다.
딱히 불이 있다고 해서 그게 왜 있는지 언제 타오르는지 언제 꺼지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
태양이 왜 거기서 빛나는지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종류의 편안함이다.
오늘 나 때문에 저렇게 빛나는 건가.
저 빛은 무슨 암시인가.
내일 갑자기 사라질까.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빛나고 있을 뿐이다.
상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가시성이라고 하자.
화가 나 있으면 화가 난 이유가 보인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이 보인다.
싫으면 싫다고 한다.
다가오면 왜 다가오는지 대강 이해된다.
멀어지면 그 변화 역시 관계 안에서 인식할 수 있다.
말을 하면 그렇다, 아니다는 응답이 있다.
응답을 하고 나서 하겠다, 않겠다는 결정도 있다.
좋은 상태든 나쁜 상태든 그다지 덜컹거릴 것이 없다.
아무리 혼돈의 카오스로 들어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투명한 아크릴 케이스처럼 알 수 있으니까.
나의 평안은 아크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