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온전할 수 있다면, 관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십대에 했던 생각이다. 그때 봤던 바카라이 있다. 동그라미의 이야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쓴 셸 실버스타인이 쓴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이라는 바카라이다. 동그라미에서 삼각형 한 조각이 빠져 있는 주인공이 자신에게 꼭 맞는 조각을 찾아 굴러다니는 그림바카라이다. 여러가지 모험을 하다가 결국은 그 조각에 맞는 부분을 찾는다. 해피앤딩이었느냐고 한다면, 글쎄.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채로 굴러가다가 더 이상 맞지 않게 된다.
나는 그 그림바카라을 읽고 슬펐다.
그리고 절망했다.
그 바카라을 그 당시에 발견한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꼭 맞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신의 빈 곳은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 바카라은 다음 후속작도 있다. 《The Missing Piece Meets the Big O》
여기서는 빠진 조각이 주인공이고, 완전한 동그라미 Big O를 만난다. 사실 후속작을 보지 않아도, 이미 그 전의 그림바카라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다. Big O가 나오는 바카라은 “나를 완성해줄 상대”라는 생각 자체를 뒤집어버린다.
나를 채워줄 상대 그런 것은 없다. 스스로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는 방법 밖에는.
그렇다면 누군가는 왜 필요한 것일까?
꼭 맞는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각자는 굴러가면서 변화한다.
상대의 존재 목적은 나에게 맞추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이란 만난 당시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상대가 나에게 맞는지 알 수 있을까?
처음 몇 달이면 취향, 대화의 재미, 끌림, 생활 리듬 같은 건 꽤 많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도파민과 열정이 넘쳐나는 동안에는 어긋나는 것들에 대해서도 넘어가게 된다.
좋은 것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신뢰나 갈등 처리, 바카라임감, 상대의 자유를 대하는 방식은 시간이 필요하다.
평온할 때는 누구나 꽤 괜찮을 수 있으니까.
거절당했을 때,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를 때, 한쪽이 힘들 때, 실수했을 때, 관계가 귀찮아졌을 때.
그때도 서로 다시 회복될 수 있는가.
어쩌면 관계를 이어가는 중요한 것은 이런 능력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초반에는 특히 자신의 낯선 모습들을 대면하게 된다.
자신의 과거와 결핍
상대에게 씌웠던 투사들.
그런 것들을 모두 통과하고 나서도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현실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가.
관계를 이어나가는 동안에도 간과하는 것들은 생긴다.
상대는 언제까지나 처음 만났던 그 사람이 아니다.
과거의 상대는 현재의 그가 아니다.
내가 변하듯이 상대도 변한다.
늘 새로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맞는다’는 상태 자체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맞는 이를 만나도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한다.
나는 이미 굴러갈 수 있는데, 굳이 누구와 함께 굴러가고 싶은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 않을 수많은 이유들이 있어도 해야할 하나의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어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