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과 실제 필요한 것. 둘은 다르다. 예상은 자주 빗나간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실제로 필요한 것은 다르다.
웃긴 말인데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별을 하고 나서의 일이다.
처음에 나는 상대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것은 표면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상대의 마음이 100% 사랑이라 하자.
좋은 일인가? 관계에서도 좋은 일일까? 나에게도 좋은 일일까?
그 상대가 악의 트라이앵글을 다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나르시시즘+마키아벨리즘+사이코패시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나는 상대의 무엇이 좋았을까 궁금했다.
첫째, 나의 좋은 면을 알아봐 주는 경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은 정말 행복하고 멋진 일이다.
둘째, 버리고 잊고 살았던 취향의 복구.
내가 잊고 있었던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취향과 성격을 상대가 갖고 있음을 깨달은 것.
외부의 가치로 내 취향을 의미 없다고 판단당했던 것이 사실은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답답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소소한 취미들에 대해서 왜 비난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어쨌든, 안 하고 살았다.
내가 원한 것은 정말 사소하고 의미 없고 가치 없어 보일지라도 버리지 않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사도 없는 경음악, 노래방에서는 부를 수 없는 흥얼거리는 노래들, 아주 오래 듣지 않고 있던 음악들.
살면서 정말 많은 비난을 들었다. 그런 노래를 좋아한다는 자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나는 상대를 만난 이후로 어떤 날엔 하루에 수백 곡의 음악을 장르 불문 찾아들었다.
그 과정에서 트랜스, 앰비언트, 다운템포, 트립합, 일렉트로니카 같은 음악들을 다시 찾아들었다.
셋째, 호기심과 공부하는 즐거움의 복구.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개인 성향이다. 호기심에서 모든 탐구는 시작된다. 내가 매우 애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거의 일에서 쓰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들로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게 되었다.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찾아보고 바카라과 강연을 접하는 자체가 정말 좋다. 새로운 것을 깨달을 때의 행복감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멋진 저서와 학자들은 넘치도록 많다. 철학자나 심리학자가 일평생을 바쳐서 만든 내용을 짧은 시간에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워가면 언젠가는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넷째, 쓰고 싶은 것을 공개하는 허용.
그전에도 썼지만 공개한 적은 거의 없다. 부끄럽다. 완성된 바카라이 아닌 것을 공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세상에 수많은 좋은 글이 있는데 굳이 내가 메모 같은 글을 공개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글을 쓰고 공개하는 것 말고는 풀어낼 방법이 없어서 글쓰기를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상대가 내게 준 것은 새로운 것이 거의 없었다.
원래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다시 사용해도 된다고 나 스스로에게 허용하게 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상대를 보면서 나는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음악을 듣는 사람도 나였고,
궁금한 것을 찾아보는 사람도 나였고,
소설을 쓰는 사람도 나였다.
내가 필요했던 것은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허락.
더 많이 궁금해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는 삶.
그것이 내가 실제로 필요했던 것이었다.
사실은 이것도 표면이다. 껍질을 걷어내면 또 다른 껍질이 나온다.
그래서 질문하기로 했다.
상대의 마음은 뭘까?
이런 질문말고,
내가 필요한 것은 뭘까? 라고.
어쩌면 내가 이별을 슬퍼했던 것에는
저 사람 앞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굳이 축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감각과 가능성이 들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