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쓴 자크 라캉의 사랑론을 다시 읽었다.
사랑은 뭘까?
왜 멍청한 짓을 하고 말도 안되는 감정을 느끼고 헤어나오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되는 것일까?
평소의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여러 정보를 동시에 처리한다. 장점도 보고 결함도 보고, 비용도 계산하고, 위험도 판단하고, “이 사람과 실제로 지낼 수 있나”도 생각한다. 그런데 강하게 사랑에 빠지면 한 사람이 갑자기 과도한 중요성을 얻는다. 그 사람의 문자 하나가 다른 사람의 문자 열 개보다 중요해지고, 사소한 표정 하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평소라면 별것 아닌 사건에 엄청난 의미가 붙는다.
그래서 정말 좀 멍청해진다.
주의와 가치평가가 편향되는 것이다. 두뇌가 그 사람과 관련된 정보를 높은 우선순위로 올려놓는다. 그래서 평소의 자신이라면 “자료 부족. 판단 보류.”라고 할 일을 사랑에 빠진 경우에는 밤 세 시에 자료 세 개 가지고 장편 논문을 쓸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상태에는 욕망이 아주 강하게 개입한다.
저 사람도 나를 원하는가.
나는 저 사람에게 무엇인가.
저 사람의 세계에서 나는 특별한가.
이런 질문들이 발생한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라는 사람만 원하는 게 아니고 상대의 욕망 속에 있는 나의 위치를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평소에는 독립적이고 냉정한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이상한 질문을 한다.
“왜 답이 없지?”
“저 말은 무슨 뜻이지?”
“나를 좋아하긴 하나?”
“왜 저걸 올렸지?”
평소의 자아가 보면 상당히 황당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는 것의 중요한 특징은 자기완결성이 깨지는 것이다.
평소에는 내가 내 세계의 중심이다. 내 시간, 판단, 계획, 욕망을 내가 관리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중요해지는 순간 내 세계 안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하나가 들어온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내일 마음이 달라질지도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떠날 수도 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지면 사고 체계의 우선순위가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재배치된다. 평소에는 판단이 분산돼 있다. 일, 사람, 위험, 시간, 체력, 미래를 동시에 본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면 특정 사람이 현저성을 독점한다. 그 사람과 관련된 자극이 유난히 크게 들어오고, 사소한 정보에도 중요도가 올라간다. 메시지 한 줄이 하루치 사고를 먹어버리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두 번째는 보상 예측 체계가 강하게 작동한다. 상대의 관심, 답장, 만남, 미소 같은 것이 보상으로 인식되면 뇌는 그 보상을 다시 기대하게 된다. 특히 보상이 일정하지 않을수록 더 집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답장이 계속 신경 쓰이는 식이다.
세 번째는 확증편향이 세진다. 이미 그 사람을 특별하다고 느끼면 그 특별함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잘 보이고, 반대 증거는 축소해서 해석하기 쉽다. 평소 같으면 “정보 부족”이라고 할 일을 “이건 분명 무슨 뜻이 있어”라고 읽기도 한다.
네 번째는 미래 시뮬레이션이 폭주한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현재 그대로만 보지 않는다. 가능성을 본다. “이 사람이 이런 면도 있겠지”, “나중에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이렇게 될 수도 있겠지” 같은 서사를 만든다. 그래서 실제 사람과 가능성 속 사람이 섞여버린다.
다섯 번째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기 어려워진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보기 시작한다. “나는 저 사람에게 어떤 존재지?”가 중요해지니까 평소보다 자기평가가 흔들린다. 라캉 식으로 말하면 타자의 욕망 속에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는 이상한 행동은 꽤 일관된다.
평소엔 안 하던 의미 부여를 하고, 평소엔 참던 확인을 하고, 평소엔 무시할 불확실성을 못 견디고, 평소엔 보류할 판단을 성급하게 내리고, 평소엔 웃고 넘길 한 문장을 열 번 읽는다.
정말 약간 멍청해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정 대상에 대한 가치 평가가 과열된 상태다. CPU 성능은 그대로인데 한 프로그램이 자원을 거의 다 먹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제일 위험한 건 “나는 지금도 아주 합리적으로 보고 있다”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건 감정과 판단 사이에 시간차를 두는 것이다. 좋아할 수 있고, 들끓을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결정은 반복된 행동, 실제 조건, 시간 속에서의 일관성을 보고 내리는 게 안전하다.
사랑에 빠지면 한 사람의 중요도가 너무 커져서 세상이 그 사람 중심으로 왜곡되기 쉬워진다.
그런데 그 사람의 선택이 나에게 중요하다.
바로 여기서 사랑의 취약성이 생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다는 건 상당히 우스운 일이다.
자유로운 타자에게 내 행복의 일부를 노출시키는 일이니까.
“나는 당신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좋다.
그런데 그 자유에는 “나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된다.
그래서 소유욕이 생기기도 하고, 질투도 생기고, 확인하고 싶어지고, 상대를 예측하고 싶어진다. 불확실성을 줄이면 취약성도 줄어들 것 같으니까.
역설적으로 상대를 완전히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사랑에서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도 사라진다.
타자성이다.
내가 프로그램한 사람에게 선택받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자유롭게 나를 거절할 수도 있는 사람이 계속 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그 선택이 의미를 갖는 것이다.
사랑에는 모순이 있다.
“당신이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자유로 나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사랑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에 빠질 때는 상당 부분 사건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갑자기 중요해진다. 주의가 몰리고, 욕망이 활성화되고, 상상력이 폭주하고, 상대에게 의미가 증식한다.
falling in love.
fall.
걸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합리적으로 입장 신청하는 것도 없다.
떨어진다.
“검토 결과 귀하와 사랑에 빠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것은 없다.
그 상태가 지나간 뒤부터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이 사람을 실제 사람으로 볼 수 있는가.
처음에는 상당 부분 내가 만든 이미지와 사랑에 빠진다. 내가 본 몇 가지 특징, 내가 느낀 감각, 상대가 보여준 일부 모습, 거기에 내 욕망과 환상이 붙는다.
시간이 지나면 실제 인간이 튀어나온다.
“어? 이런 사람이었어?”
환상 속 인물이 조금씩 죽고 실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래도 이 사람을 알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가.
그때부터 사랑은 들끓는 상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타인이 갑자기 내 세계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획득하는 사건이다.
사랑은 그 특별한 사람이 내가 상상했던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계속 발견하면서도 그 사람의 현실을 알아가려는 과정이다.
사랑에 빠지면 왜 말도 안 되고 멍청하고 감정적이고 들끓는 상태가 되는 것일까?
초기에는 판단 편향되고, 의미 과잉생산하고, 쓸데없이 휴대폰 보고, 평소 같으면 웃어넘길 문장 하나를 열일곱 번 생각하고, 미래 시뮬레이션 돌리고, 갑자기 노래 가사가 전부 자기 이야기 같아진다.
그것이 전부라면 사랑은 그냥 강렬한 심리 상태로 끝날지도 모른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열이 조금 내려간 다음이다.
투사의 회수 이후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아. 내가 상상한 사람이 아니었네.”
그때 실제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도 그 사람이 궁금하다면, 그때부터가 사랑의 본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