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 맛이 아니야. 엉엉.

대나무 소쿠리에 껍질째 담겨 나오는 녹색콩이 먹고 싶어졌다.

bystephanette

국민학교 때 가끔 여름방학이면 증조할머니댁에 갔었다.

증조할머니는 당시에도 여든이 넘으셨고, 거의 백 살 가까이 사셨다.

콩잎으로 담은 물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맛을 아주 애정한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방법이 없다.


약간 까슬한 솜털이 가득한 콩잎이 완전히 익지도 그렇다고 쌩쌩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상태로 동치미 같은 맑은 국물에 담겨 나온다. 깔끔하고 신선하고 뭐라고 딱히 그 맛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정갈한 맛이다.

뜨거운 쌀밥 위에 콩잎을 한 장 올려서 입 안에 넣으면 까슬하다가 슬며시 늘어지는 콩잎의 촉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푸른 풋고추에 빨간 고추장을 푹 찍어서 입에 넣는다. 완전히 여름이다.

개천에서 그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들어왔으니 뭘 먹어도 맛있었을 것이다.

엄청나게 큰 하천의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는 보 아래에 아이들이 모여서 놀았다.


마구잡이로 자라난 한여름의 잡초들을 헤치면 나오는 맑은 하천과 뛰어다니는 아이들.
하얀 한복을 입고 계셨던 증조할머니와 이상하게도 심하게 달았던 간장 비빔국수.


증조할머니는 비빔국수를 가끔 해주셨다. 소면보다 조금 더 굵고 둥그스름한 스파게티 같은 면발에 간장으로 달달하게 간을 한 국수다. 어렸던 증손주들을 위해서 설탕을 듬뿍 넣어주셨다. 나는 그걸 한 입 먹고서는 펑펑 울면서 말했다.

"할머니, 이 맛이 아니야. 엉엉."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진짜 서럽게 울었었다.


증조할머니는 설탕을 더 넣어서 다시 만들어주셨다.

극강의 단맛이라니. 나는 다시 말하고 싶었다.

"할머니, 어리다고 해서 설탕을 좋아한다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야."라고.

그러나 그냥 참고 먹었다. 울어버리는 탓에 배가 너무 고팠다.


증조할머니는 나를 공주님처럼 대해주셨다.

우리 집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밥을 먹는데 투정이라니.

아, 아마도 어린 나는 반찬 투정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있었던 사건이다.

펑펑 울었던 나는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순간 나는 행복했었다.


이자카야에 가면 가끔 대나무 소쿠리에 담겨 나오는 녹색 껍질채 쪄놓은 콩.

그걸 먹으면 그때가 떠오른다.

푸른 잡초들과 물놀이. 푸른 콩잎. 극강의 간장 비빔국수. 그리고 칭얼거리고 투정 부리던 어린 나.


갑자기 그 콩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주문했다.

'일식집에서 즐겼던 단맛 좋고 품질 좋은 자숙대두.'

내가 쓴 문장이 아니다. 제품명이다.

먹고 있다.


한여름 밭에서 막 따서 쪄낸 맛은 아니다.

그러기엔 껍질이 말해준다. 그것보다는 이동경로가 길었다고.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초록색 콩 껍질이 입에 닿아 까슬거린다.

여름이 완전히 다 가버리기 전에 녹색 콩이라니. 흠. 좋군.

작가의 이전글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