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단테 신곡, 믿음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bystephanette

이 글은 ITAL 310: Dante in Translation, 주세페 마초타(Giuseppe Mazzotta) 교수 강의 중 21강, 『신곡』 천국편 24·25·26곡 중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마초타 교수는 꽤 유명한 단테 연구자다. 예일대 Sterling Professor Emeritus이고, 단테·보카치오·페트라르카·비코 등 이탈리아 문학과 사상사를 폭넓게 연구해 온 학자다. 이 강좌는 『신곡』 전체를 지옥편부터 천국편 끝까지 24강으로 훑는 공개 대학 강좌라서, 단테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오래 찾아보는 콘텐츠다.


사실 희망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믿음, 희망, 사랑 중 사랑에 대해서 궁금하니 희망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자.


희망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와 과거를 닫힌 것으로 확정하지 않는 능력이다.

희망은 낙관주의와 다르다. 마초타가 읽는 단테의 희망은 시간과 가능성, 추방, 자기 변형, 믿음을 모두 묶는 개념이다.


희망은 미래를 향한 덕이다.

희망의 시간성을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의 관점에서는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것, 특히 모든 것을 잃은 추방자가 붙잡는 환상이나 자기기만이다.

단테는 이와 다른 길을 선택한다.

희망은 시간의 덕(virtue of time), 더 정확히는 미래의 덕이다.


과거는 희망할 수 없다. 어제 비가 오기를 지금 희망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희망은 반드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희망은 미래를 미래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확정된 것처럼 취급하지 않는 태도다. 희망은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확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단테의 희망은 가장 현실적인 덕이다.

희망과 현실주의는 보통 반대편에 놓기 쉽다. 현실적인 사람은 냉정하게 가능성을 계산한다. 희망하는 사람은 근거 없이 낙관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단테는 반대로 말한다. 희망이 현실적인 이유는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시간의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실패나 현재의 조건을 영원한 상태로 확정하는 쪽이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희망은 낙관주의보다 비종결성에 가깝다.

즉, 지금의 상태가 최종 상태라고 아직 말할 수 없다.

정말이지 멋지다. 이런 설명을 듣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단테를 진심으로 존경하기로 했다.


현재의 상태를 영원으로 오인하지 않는 태도라니.

실패했다.

무너졌다.

끝난 것 같다.

그러나 단테는 말한다.

현재가 미래 전체에 대해 판결할 권리는 없다.

정말 대단하다.


그러니 절망은 현재가 미래까지 독점하는 상태다.

지금 이렇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 절망은 이렇게 시간 전체를 하나의 순간으로 압축하는 것이다.

희망은 그 압축을 풀어낸다.

지금은 지금일 뿐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싶어졌다. 브라보! 브라보!

단테 덕분에 행복해졌다.

존경하는 사람이 행복까지 주다니 퍼펙트! 인정!


희망의 반대는 의심보다 절망이다.

희망의 반대편에 절망이 놓이고, 절망은『지옥편』의 메두사 이미지와 연결된다. 메두사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버린다. 마초타는 이것을 특정 관점, 특정 현실, 특정 자기상, 과거에 붙잡힌 채 굳어버리는 것으로 읽는다.

절망은 시간이 굳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일은 이렇게 끝났어.”
“과거가 이랬으니 미래도 이럴 거야.”
“여기서 더 생길 수 있는 것은 없어.”

절망은 현재의 해석이 과거와 미래 전체를 봉쇄하는 것이다.


희망은 그 굳어버림을 깨는 힘이다. 미래가 아직 열려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자기상도 최종판이 아니고, 과거의 의미 역시 최종판이 아닌 것이다.


희망이 과거를 바꾼다.

마초타의 강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는 단테의 희망이 과거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미 벌어진 사건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가 무엇을 의미했는가가 미래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재난이나 실망 속에 있던 어떤 씨앗이 훗날 나타나 예상하지 못한 미래를 준비했음이 드러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 솔메이트가 알려준 이야기다. 과거에 사업이 망했다. 갖고 있던 집을 팔아 남은 돈으로 할 수 없이 주식에 넣었다. 현재에도 망한 상태다. 10년 뒤에 잊고 있던 주식이 몇십 배로 불어났다. 과거의 사건 자체는 그대로 있지만 그 사건이 갖는 자리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내 삶은 무너졌다는 사실이었지만, 훗날에는 그 붕괴가 지금의 삶으로 이어지는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가 될 수 있다.


단테의 희망에는 아주 특이한 시간관이 들어있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직선으로 이동하는 선형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가 완성되면서 과거의 의미가 역으로 수정될 수도 있다. 희망은 바로 그 가능성을 닫지 않는 태도다.


희망과 추방이 왜 연결될까.

단테 자신이 실제 추방자였기 때문에 귀향에 대한 희망과 연결된다. 단테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시인으로 인정받고, 세례를 받았던 장소에서 월계관을 받는 장면을 상상한다. 평화가 회복되고 자신이 공동체로 다시 받아들여지는 귀환이다.


그러나 마초타의 해석에서는 귀환은 원상복귀가 아니다. 세례당은 출애굽의 상징이다. 출애굽은 속박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 상태로 이동하는 이야기이고, 마초타는 단테의 여정을 이집트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구조로 읽는다.

추방은 자기를 다시 만들고 다시 생각하는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희망은 돌아가더라도 이전의 내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추방을 통과한 내가 돌아간다.

희망은 미래에서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다.

희망은 조건부다.

단테의 『천국편』 25곡 시작에는 “만약 언젠가 그렇게 된다면”이라는 조건법적·희구적 표현이 나온다. 단테 자신도 귀향을 확정적으로 선언하지 않는다. 이것은 희망과 소망을 구별하는 개념이다.

희망에는 contingency, 우연성과 조건성이 들어 있다. contingency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태, 미래의 불확정성을 의미한다. 미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조건성이자 아직 어떤 방향으로든 열려 있는 미래의 조건성이다.

될지 모른다.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미래는 열려 있다.

그러니까 희망에는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희망이 가능해진다.

확실히 일어날 일에는 희망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은 믿음과 결합한다.

희망은 믿음과 떨어지지 않는다. 미래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 가능성을 계속 붙잡으려면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그것을 믿기로 하는 선택(faith)의 행위가 필요하다. 희망은 믿음을 완성하거나 믿음 안에 들어 있던 시간적 요소를 드러내는 것이다.

단테가 성 야고보 앞에서 제시하는 희망의 정의도 나온다. 희망은 “미래의 영광에 대한 확고한 기대”이며, 그것이 신적 은총과 앞선 공덕에서 생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과 관계를 맺게 하고,
희망은 그 믿음을 미래라는 시간 속으로 움직이게 한다.

희망은 믿음이 현실의 시간 속에서 구현되는 방식이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계속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희망은 시간에 대한 태도다.


현재를 최종판으로 만들지 않는다.
과거의 의미를 최종판으로 만들지 않는다.
현재의 자기 모습을 최종판으로 만들지 않는다.
미래가 무엇을 가져올지 자신이 모두 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적을 기다리는 환상도 아니다. 단테 자신이 추방 상태에서 글을 쓰고, 마초타는 그 글쓰기를 영혼의 금욕적 노동(ascetic labor of the soul)으로 설명한다.

희망하는 인간은 미래를 향해 현재를 살아내는 사람이다.


희망은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래서 지금의 실패를 영원으로 만들지 않고,

과거의 의미를 고정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도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올진 모른다.
다만 아직 올 것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은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절망은 시간을 돌로 만들고,
희망은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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