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앞의 글 '믿음, 믿음 2'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을 어떻게 믿는가?
사람마다 방식은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믿음의 형성과정에 대한 글이다.
나는 사람을 본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우선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보자.
사람은 변한다.
이 명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람에게는 쉽게 변하지 않는 부분과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함께 있다.
사람은 타고 난대로 산다. 선천적인 성향과 자라온 과정에서 그 사람은 타고나고 또 만들어진다.
그것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선택하는 의지가 있다. 그러므로 변화의 필요성이 생길 때, 사람은 변한다.
그런 동기는 삶에서의 아주 큰 상실이나 붕괴 혹은 정체성의 흔들림 같은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조언을 하거나 바카라을 읽는 것으로는 변화가 어렵다.
사람은 안 변한다.
다시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로 인해 변화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것이 내가 보는 사람에 대한 관점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당연히 나는 그 사람을 본다.
나는 자잘하게 이것이 좋다 저것이 나쁘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다 맞춰준다.
효율성을 따지는 인간이라면, 정말 한계까지 다 보여준다. 그러면 나는 그냥 본다.
필요가 없으면 한없이 귀찮아지고 늘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행동하는 태도와 본성. 나는 그것을 본다.
가끔은 슬퍼지기도 한다.
그 사람에게 내 존재의 무게가 얼마만큼인지 알 수 있기도 하고,
그 사람이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 타인에게 얼마만큼의 배려를 하고 존중해 주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과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게 한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을 싫어한다.
사람 사이에 위계가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인간은 극혐 한다. 개인적인 성향이다.
타인을 통제하거나 소유하거나 손바닥 위에 놓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인간도 싫다.
타인의 취약성을 이용하는 인간도 정말 매우 아주 완전히 극혐 한다. 개인적인 성향이다.
관계에서 미숙한 사람은 상관없다. 그런 것들은 품어줄 수 있는 것이다. 오래 걸려도 점점 좋아질 수 있다.
말이 친절하거나 유려하지 않아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본질이 중요하니까. 모든 것이 다 좋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굳이 택해야 한다면 포장보다는 알맹이가 좋다.
평판은 믿지 않는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직업적인 유능성은 개인적인 관계와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실체가 없는 역할은 사양한다. 그런 위치에 나 스스로를 놓는다면 나에게 미안해진다.
사람을 어떻게 믿게 되는 것일까.
나는 사람을 뭘 보고 믿을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생각해 봤다.
나는 가능태에 방점이 찍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사람의 가능성을 오래 보는 편이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좋은 모습을 먼저 보기도 한다.
그러나 가능성과 신뢰는 다른 문제다.
가능성은 미래에 있고, 믿음은 지금까지 실제로 있었던 것 위에 놓인다.
사람 좋아한다.
나에게 시간이 있다면 아름다운 추억들로 방울방울 물들이고 싶다.
내가 가진 것들을 좋은 사람과 행복하게 나누고 싶다.
사람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고,
어디서부터 믿을 수 없는 것일까.
그 사람의 본질적인 면을 통해서 믿을 수 있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힘을 가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귀찮아졌을 때도 타인을 사람으로 대하는지.
나는 그것이 꽤 오래 반복된 뒤에야 사람을 믿는다.
결국 내가 믿는 것은 말도, 가능성도 아니다.
그 사람이 반복해서 선택해 온 방식이다.
사족
나는 왜 사람을 오래 보는가.
나는 사적으로 친한 이들은 매우 오랫동안 그 관계를 이어간다.
기본 20년 이상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친한 이들이 가진 성향은 나를 물들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보는 이유는
누구와 오래 함께할 것인지를 고르는 일은,
결국 미래의 나를 고르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별명이 스펀지였다.
흡수하고 모두 받아들인다.
나는 친한 이들과의 짧은 대화에서도
자주 감동한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