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어려움

착하면 척하는 대답에 대해서

bystephanette

대화는 잘 통하면 대답 한 마디에도 상당히 즐겁다.


예를 들면 내가 불라불라 말을 한다.

솔메이트가 답한다.

“그래.”

다시 내가 불라불라 말을 한다.

솔메이트가 답한다.

“그래.”

나는 신나서 다시 말한다. 어쩌면 “그래.”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시원하고 상쾌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답을 다시 듣고 싶었던 것도 같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피곤하다.

그건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을 꺼내기 전에 너무 많은 층을 동시에 계산해서 그렇다.


내가 말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이런 게 한꺼번에 돌아간다.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받을까.”

“내 의도가 왜곡되지는 않을까.”

“이 말의 맥락까지 설명해야 하나.”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

“내가 너무 길게 말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걸 말하면 내가 불리해지나.”

“지금 말하는 게 맞나.”

그러면 실제 감정은 맨 뒤로 밀려난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단순했는데, 말하기 전에 이미 검열·번역·압축·방어를 몇 번 거치게 된다.

그리고 나서도 다시 생각한다. 적당한 때에 원하는 목적에 맞게 잘 말했는가.


생각을 말로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나의 핵심어로는 도무지 전달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할 때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표현 전에 매우 정밀하게 편집하려고 한다.

그리고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마다 느낀다. 아니, 좌절한다.


왜 나는 더 잘 말하지 못하는가.


특히 상대가 계산적이거나 평가적인 사람처럼 느껴지면 더 심해진다. 그때는 말이 대화가 아니라 증거 제출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보다 “어떻게 말해야 오해받지 않을까”가 앞선다.


“다 말해도 된다”는 허용과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안정성은 다르다.


피곤하다.


나는 사적 영역의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말한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식하게 되는 일이 생기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진짜 감사한 일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편하게 말을 하고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나는 말을 시작조차하지 못할 때가 있다.

말을 잘 못하는 순간에는

어쩌면 내 몸이 먼저 이렇게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 앞에서는 아직 원문 그대로 말하면 안 된다.”


해결바카라은

먼저 내 마음 속의 원문을 복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대에게 바로 말하기 전에 혼자 이렇게 쓴다.


“설명 없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리고 세 줄만 적는다.

“나는 그때 아팠다.”

“네가 침묵한 게 더 아팠다.”

“나는 이해받고 싶었다.”


그다음에야 설명을 붙인다.


그리고 나서 작성한 글은 삭제한다.

굳이 편안하지 않은 상대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나는 설명 능력이 너무 좋아서, 설명이 본문을 덮는 경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요약본보다는 전문 보존이 내게는 더 중요하기도 하다.


내가 못하는 건 말하기가 아니라,

가끔 설명 없이 말하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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