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노트. 말로 무너졌습니다
오후 10시. 뜨끈한 라멘 국물을 마시기 참 좋은 시간이다. 갓 튀긴 교자에 생맥주까지 떠올리니 입안에 아밀라아제 대축제가 열렸다. 그동안 나는 오후 8시 이후로는 물만 마셔왔다. 오전 10시에 TV 뉴스를 진행하면서 생긴 습관이었다. 내일은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에 있지도 않았다. 여름휴가로 일본 오사카의 밤거리를 L과 함께 걷고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에게 선언했다.
“이번 여행은 시간 상관없이 야무지게 먹을 거야!”
L이 라멘 한 그릇을 먹고 가자는 제안은 당연했다. 정작 야식을 먹는 순간이 되니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그에게 그냥 숙소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L은 여행을 왔는데 괜찮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도 나는 거절했다. L은 먹기로 하지 않았냐고, 라멘 가게 문을 열겠다고 했다. 나는 소리를 쳤다.
“안 먹어! 안 먹는다고! 몇 번을 말해!”
무거운 침묵으로 그와 5분 정도 더 걸었을까.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겸연쩍어하는 L의 표정이 마음에 쓰였다. 슬그머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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