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 그가 잠든 사이에

강의노트. 말로 무너졌습니다

by봄아범


아버지. 제가 없는 집은 어떠신가요. ‘자라.’라고 말할 피곤에 찌든 30대 남성이 없어져서 허전하지는 않으신가요.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나누어 먹을 입이 줄어들어서 더 든든하게 드실까요. 거실의 TV와 제 방의 컴퓨터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던 사극과 예능 프로그램의 볼륨이 사극으로 통일되어 즐거우실까요. 저는 종종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거실의 스피커로 재즈가 흘러나올 때 대조영을 연기하는 최수종의 목소리가 잔상처럼 남습니다. 신혼집에 입주하고 음식을 배달시킨 적은 없지만, 치킨집을 지나치면 아버지가 주문하신 닭이 뿜어내는 기름 냄새가 겹쳐집니다. 그럴 때마다, 발신 기록 아래에 있는 아버지를 누를까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다섯 번에 한 번쯤 머쓱한 전화를 드립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나요. 전화번호부의 아버지가 ‘아버지’로 저장된 지 몇 년 안 되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성함 세 글자로만 건조하게 저장되어 있었던 이유는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던 제 마음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아버지와 서먹해졌을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아득해진 초등학생 때의 여름날 늦은 오후. 안방이자 제 공부방이기도 한 공간에 아버지와 제가 함께 있었던 때로 돌아갑니다.




한여름 땀에 젖은 셔츠처럼, 저는 모든 게 불편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매일 써야 하는 일기도. 돈은 없는데 저금하듯 풀어야 하는 ‘문제 은행’도. 가야만 하는 수학 학원과 개념 없는 제게 필요한 ‘개념 원리’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아이스크림도. 원하는 만큼 갖지 못하는 미니카도.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해야 하는 시간이 반복되니까 자연스럽게 화를 낼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일기를 검사하는 사람. 문제집을 넘길 때 옆에 앉아 있던 사람. 학원을 등록하고 교재를 사는 사람. 미니카는 한 대만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어머니를 참 많이 미워했습니다. 대놓고 원망할 수는 없기에, 눈에 안 보일 때 마음껏 원망했습니다. 한숨은 말에 쌍시옷을 붙이고, ‘어머니’라는 세 글자에 들어있지도 않은 모음 ‘여’와 ‘ㄴ’ 받침을 입에 담았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죠. 코 고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서 문제를 푸는 것인지, 욕을 하는 것인지 불분명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규칙적인 코골이가 잦아들면서 당신의 나직한 말이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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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소년. 2012년부터 종교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제작하는 남자. 2023년부터 가족과의 기록을 남기는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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