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말로 살고 싶었습니다
아래의 문장을 같이 읽어보죠.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행복시의 기본 슬롯 5.0 비전 선포 및
종합계획 착수보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눈을 감겠습니다. 읽은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행복시의 기본 슬롯 4.0……. 가물가물하십니까. 비전만 선포하셨습니까. 계획 착수에 이르셨습니까. 시작이 반이라는데, 반까지 가는 게 쉽지 않죠. 눈으로 마주한 단어가 둥둥 떠다니면서 입에 붙지 않는 기분이 드실 수 있습니다. 연단에 서 있던 제가 그랬습니다. 행사 진행은 손과 시선이 바쁜 일입니다. 단상이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한 손에는 마이크를, 다른 한 손에는 원고 카드를 잡은 채로 청중과 눈을 맞추며 절반 정도는 외워서 말하는 고충. 심지어, 행사의 초고. 첫 번째 원고를 제가 구성했음에도 내용이 쉽게 머리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행자인데 원고를 왜 쓴 건지 궁금하시죠. 제가 자처했습니다. 최초에 저는 말을 하는 사람이지, 말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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