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었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저마다의 독특한 신경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제 부안의 한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서른 살 무렵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이후, 내게 허리는 늘 걱정거리였다. 여전히 불편하긴 했지만, 한라산에 오르고, 달리기까지 할 수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올해 쉰 살이 넘어가자,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최악의 순간이 찾아온 걸 직감했다. 좌측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따로 노는 듯했다. 무엇보다 자는 동안에도 다리가 저려 자주 깨다 보니, 수면의 질은 물론 삶의 질까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의사가 권한다면 수술이나 시술이라도 받을 참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다 보니 큰맘 먹고 일정을 빼기도 쉽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선택한 곳은 부안의 한 정형외과였다. 밤에라도 편하게 자고 싶어 소염제나 수면 유도 성분의 약을 처방받고, 물리치료나 좀 받을 요량이었다.
어르신들로 북적이는 오전 시간을 피해 오후 세 시쯤 병원에 들어섰다. 읍내 중심가에 있었지만, 병원 시설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날 만큼 낡아 보였다. 병원 서랍장에 상패 등을 보니 군의관으로 근무했던 분 같았다. 다행히 생각했던 대로 대기 환자는 많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의사의 권유대로 엑스레이부터 찍고 상담을 시작했다.
의사는 허리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며, 선천적으로 척추가 기형적인 데다 그동안 무리까지 한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수술을 하면 장애 등급이 나올 수 있는 상태이고, 옛날 군대였으면 의가사 제대를 할 정도의 허리 상태란다. 하긴 온라인 게임 때문에 약 7년을 인천과 목포를 오가며 거의 격주로 9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했던 세월이 뼈에 사무쳤을 터였다. 여기에 일과 시간의 대부분을 바카라상 앞에 앉아 보냈으니 허리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의자에 앉을 때마다 허리에 상당한 부담이 간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차였다.
의사는 내게 4개월쯤 푹 쉬는 게 최선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테니 최대한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큰 병원에 가는 건 되도록 미루라고 했다.
"의사들은 거의 다 장사꾼이라 무조건 수술이나 시술을 권할 겁니다. 환자는 그걸로 허리가 나아졌다고 착각할 뿐이에요."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최악의 결과야 이미 예상했던 터였고, 그 진단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들으니 정형외과뿐만 아니라 정신과 치료도 받은 것처럼 홀가분했다.
일주일 치 약 봉투를 들고 주차장으로 걸었다. 좌측 다리를 절뚝이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 유난히 가을 하늘이 파랗다.
퇴직하면 파란 하늘 아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었는데…….
나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환자들처럼, 겉은 멀쩡하지만 실상은 장애인처럼 불편한 몸이 되었다. 앞으로 더 나빠질지 모를 허리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게 나이를 먹는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