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추석을 쇠러 내려온 동네 형님들과 아버지, 아저씨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논길을 따라 불도그를 닮은 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화이트퍼그 믹스견으로 보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개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꽤 들어 보였고, 앞다리는 관절염을 앓는지 절뚝거렸다. 배는 밥을 많이 먹은 듯 불룩했으며, 털은 정성스레 관리를 받은 티가 났다. 얼마 전까지 주인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형님들은 추석 연휴에 데려와 버리고 간 것 같다며 혀를 찼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명절 유기견이 우리 동네에서도 발견된 것이다.
개는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에는 아랑곳하지 않더니, 이내 길 한가운데 편하게 드러누워 버렸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며 농담 삼아 말했다.
"이제 저 개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바카라임을 져야겠네요!"
며칠 뒤 다시 시골집에 들렀다. 시골집에서 원래 키우던 진돗개 믹스견이 내 차 소리를 듣고 집 앞까지 쫓아 나왔다. 그 뒤를 어슬렁거리며 따르는 건 추석날 본 화이트퍼그 믹스견이었다. 아버지는 길에 누워 있던 그 개에게 집에 있는 사료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그 뒤로 우리 집은 그 개의 선택을 받았고, 추석이 끝난 이후에도 떠나지 않고 눌러앉았다.
마당은 두 마리가 한바탕 얌전하게 놀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살짝만 어질러져 있었다. 둘은 금방 친구가 되어 장난을 치며 꽤 친해진 듯했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이 개 두 마리를 다 바카라임지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고, 어딘가에 있을 원래 주인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 동물보호소에 연락했다.
보호소에서는 요즘 유기견이 많아 2주 뒤에나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크게 말썽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시골집 개와도 잘 지내기에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는 그 화이트퍼그 믹스견과 함께 냇가로 산바카라을 나갔다. 관절염 때문에 비뚤어진 다리를 하고서도 잘 따라왔다. 아직 성성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신나게 달리기도 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에게 "앉아"라고 명령을 내려 보았다. 개는 조금 망설이더니 곧바로 엉덩이를 붙였다. "엎드려", "빵" 하는 재주까지 쉽게 이행했다. 얌전하고 착하고 말까지 잘 들으니, 원래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것이다.
출근하려고 아침에 시골집을 나서는데, 녀석이 절뚝거리며 내 차 앞까지 따라왔다. 나이는 꽤 들어 보였지만 눈빛은 초롱거렸고 이빨도 성해 보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중으로 개를 데려가겠다는 동물보호소의 연락이었다. 잠시 후 마당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개 사진 한 장이 문자로 도착했다. 사진을 보니 마음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속 데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추석을 우리 집에서 보낸 손님은 그렇게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 이후에 닥쳐올 일이 빤히 예측되어 마음이 먹먹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