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에 사는 고모>
23년 전 상견례 자리에서 아버지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향해 한 말씀을 건네셨다. 그것은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고 계셨는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해 준 한마디였다.
"사돈어른, 우리 @@이가 큰집 조카들에 비해서 고모들에게 이쁨을 좀 못 받고 자랐습니다."
나 역시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바였지만, 그렇다고 고모들이 나를 편애했다거나 그 일로 크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아버지가 그 말씀을 꺼내신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자식의 작은 결핍까지 품고 살다가, 새 가족을 맞는 자리에서 자식을 위해 속마음을 꺼내 놓은 아버지의 세심한 사랑에 가슴이 묵직해졌을 뿐이다.
내게는 세 분의 고모가 있었다. 정읍에 살던 둘째 고모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남은 두 분은 이곳 부안에 살고 있다. 곧 백 세를 바라보는 큰고모와 팔십 대 중반의 막내고모. 5남매 중 막내인 아버지와 큰고모의 나이 차이는 무려 스무 살이나 된다. 큰고모는 아버지에게 누나이자 엄마 같은 존재였을 터였다.
자식을 여럿 키우고 손주까지 보신 고모들에게는 막내 동생의 조카에게까지 나눠 줄 사랑의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아도 딱히 조카들에게 큰 사랑을 주며 살지는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5월, 부안으로 발령을 받고 이 주일쯤 지났을 무렵 고모님 댁을 찾아갔다. 막내고모는 내가 대학 졸업 후 사촌들과 달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 걱정을 많이 해 주셨던 분이다. 내가 부안의 과장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누구보다 기뻐하셨다고 했다.
부안에 온 뒤로 꼭 한번 찾아오라며 몇 번이나 전화를 주셨던 고모였다. 더 미루는 것은 도리가 아닌 듯싶어 저녁 시간을 내어 길을 나섰다. 동네 이름만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찾아가는 길이었지만,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몇 년 전 보았던 풍경들이 어렴풋이 살아났다.
군청을 퇴직하고 귀농한 사촌 형이 축사에서 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었다. 막내고모는 예전보다 부쩍 쇠약해지셨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정정하셨다. 고모는 내 두 손을 꼭 잡고는 "그때 참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번듯하게 잘되어서 정말 좋다"라며 흐뭇해했다.
"이 좁은 부안에서 살다가 길에서 만나면 서로 아는 척은 하고 살아야지." 사촌누나는 내게 한 말이었다.
근 30년 만에 만난 사촌누나까지 마주 앉아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큰고모를 찾아뵙기로 했다.
큰고모를 마주한 순간, 백 세 가까이 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큰고모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누구냐고 물었다.
연세에 비해 말투만큼은 여전히 또렷하셨는데, 방문을 열 때부터 이미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던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기억은 흐려졌어도 목소리만은 정정하신 큰고모는,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면서도 다행히 거동은 가능해 보이셨다. 나는 준비해 간 봉투를 고모의 마른 손에 쥐여 드리고 어두운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요즘은 점심시간에 틈이 나면 자전거를 탄다. 하루는 시골길을 15분쯤 달리고 있는데, 어디서 본듯한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두운 밤에 찾아가서 미처 몰랐는데, 다가갈수록 그곳이 바로 큰고모가 사시는 동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온라인 게임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할머니와 꼭 닮은, 그러나 이제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큰고모가 살고 계셨던 것이다.
고모님들이 더 늙고 쇠약해지기 전에, 이렇게 얼굴이라도 뵐 수 있는 부안에서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하고 감사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