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부모님이 사신다. 두 달 전 처음 발령받았을 때만 해도 길눈이 어두워 내비게이션 없이는 엄두도 못 내던 낯선 시골길이었다. 이제는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아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어제는 아는 형님의 부친상에 다녀왔다. 향년 83세였다. 몇 년 전 파킨슨병이 와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일주일 전쯤 집에 다녀오고 싶다던 아버님의 마지막 소원을 결국 들어드리지 못했다며 형님은 나직이 후회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올해 여든이신 아버지는 지금도 노인 일자리에 나가시고, 100그루가 넘는 태추 단감 농사를 지으신다. 텃밭에는 고추와 오이, 콩과 고구마가 자란다.
오늘 퇴근길, 시골집으로 향했다. 부모님께는 미리 연락하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해지실 게 뻔하니까.
6월의 길고 긴 해가 세상을 비춘 저녁. 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호스를 들고 화단에 물을 주고 계셨다. 내가 10년 전쯤 입던 등산복 상의를 걸치셨는데, 잘 어울린다.
어머니는 반가워하기보다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방문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마당에 묶여있는 누렁이만이 꼬리가 부러져라 격하게 반긴다.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보통 미역국이나 된장국을 한 냄비 끓여 이삼일은 드시는데, 오늘따라 가스레인지 위가 텅 비어 있었다.
어머니가 왜 당황하셨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당신들끼리 계실 땐 대충 한 끼 때우려 하셨던 모양이다.
얼른 냉장고를 뒤져 동생이 보내준 어묵탕을 끓이고, 아들이 오지 않으면 좀처럼 줄지 않는 달걀을 꺼내 프라이를 했다.
그제야 어머니도 곁에 앉으셨다. 아버지가 따온 고추와 오이를 어머니표 젓갈에 찍어 한 입 먹었다. 몇 주 전의 풋내 대신 아삭함과 매콤함이 가득 찬 고추, 구수한 쌈장과 어우러진 오이가 입맛을 돋운다. 그렇게 소박한 저녁 한 끼를 맛있게 해결했다.
누렁이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산바카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아버지가 밭일을 끝내고 소파에 누워 계셨다.
다시 들어선 주방에는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었다. 조금 전 끓여드린 어묵탕 국그릇도 깨끗이 비워져 있는 걸 보니 흐뭇하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마치고 나니, 그 길던 6월의 하늘 위로 어느덧 가만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부모님의 비워진 국그릇을 보며, 그리고 깨끗해진 주방을 보며 혼자 조용히 미소 짓는다.
오늘 저녁, 26km를 달려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