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문을 닫자 거실의 생활 소음이 얇게 접혔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와 멀리서 올라오는 배관의 울림이 문틈에서 한 번 더 걸리더니, 안쪽 공기만 남았다. 바카라장에는 종이 냄새가 오래 붙어 있었다. 새 바카라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페이지가 여러 번 넘겨진 뒤에야 생기는 마른 냄새가 선반마다 눌러앉아 있었다. 바카라상 위에는 벼루가 놓여 있었다. 검은 돌 표면이 조명 아래서 묵직한 광택을 내고, 가장자리는 손에 닳아 둥글어져 있었다.
소선은 물을 작은 종지에 따랐다. 물이 닿는 순간 벼루의 홈이 잠깐 더 어두워졌다. 손목을 기울여 물을 넣는 동작이 느렸다. 물소리가 크지 않았는데도, 서재에서는 또렷했다. 그 소리가 끝난 자리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다시 올라왔다. 초침은 벽 너머에서도 들렸지만, 지금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선은 먹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에 닿는 먹의 모서리가 차갑고 단단했다. 금속의 냉기와는 다른 차가움이었다. 오래된 돌과 나무가 가진 온도.
먹을 벼루 위에 올리고, 손을 내려 천천히 밀었다. ‘스윽’ 하고 마찰이 시작됐다. 먹이 벼루를 긁는 소리는 둔탁하면서도 일정했다. 한 번, 두 번.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리듬이 생기자 서재의 공기도 그 리듬에 맞춰 가라앉는 듯했다. 소선은 팔꿈치를 너무 들지 않으려 했다. 어깨가 올라가면 힘이 섞였다. 힘이 섞이면 소리가 거칠어졌다. 그 거칠어짐이 예전의 목소리처럼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래서 손목만 움직였다. 손가락은 먹을 놓치지 않을 만큼만 잡고, 벼루에 눌리는 압력은 일정하게 유지했다.
먹물이 생기기 전의 물은 맑고, 그 맑음이 차분하게 벼루 바닥을 적셨다. 먹을 갈수록 물이 서서히 검어졌다. 처음엔 회색이었고, 곧 깊어졌다. 검정이 진해질 때마다 냄새가 올라왔다. 종이를 태운 냄새와 비슷한, 그러나 불의 날카로움 없이 눅진한 냄새. 소선은 코로만 그 냄새를 받아들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지 않아도 냄새는 충분히 들어왔다.
바카라상 모서리에 화선지를 올려 두었다. 흰 종이는 조명 아래서 거의 빛이 났다. 표면은 매끈해 보이지만 손끝으로 만지면 아주 미세한 결이 느껴지는 종류였다. 소선은 한 장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종이 끝이 손가락 패드에 스치는 감촉이 거칠게 남았다. 그 거칠음이 오히려 확실했다. 화면 속 글자와 다른, 손으로 읽는 질감.
붓통을 열자 솔깃한 냄새가 났다. 나무와 풀, 얇은 접착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소선은 붓을 몇 자루 살펴보다가, 한쪽에 따로 감싸 두었던 새 붓을 보았다. 천으로 둘둘 말아 둔 채, 실끈이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손가락이 매듭을 만지자 실이 살짝 거칠었다. 벽시계는 초침을 한 번 더 넘겼고, 그 사이 먹 가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소선의 손목이 같은 각도로 움직이는 동안, 서재는 밤의 중심처럼 조용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