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 배우지 못한 것들을 아이에게 전했다

by소선
19화. 나는 당신에게 배우지 못한 것들을 아이에게 전했다.png




새벽의 끝자락에서 서현의 숨은 조금씩 길이를 되찾았다. 이불 아래에서 올라오던 뜨거운 기운이 전날만큼 공격적으로 손바닥을 밀어내지 않았고, 물수건을 들어 올릴 때마다 천이 데워지는 속도도 느려졌다. 소선은 의자에 앉은 채로 몇 번이나 다리를 펴고 접었다. 무릎 관절이 뻣뻣하게 소리를 낼까 봐, 움직임은 작게 쪼개졌다. 벽시계 초침은 계속 같은 방향으로만 갔다. ‘착, 착.’ 그 소리 사이로 서현의 호흡이 끊기지 않고 들어갔다 나왔다.


아침이 오자, 집은 다른 소리들로 채워졌다. 냉장고 모터가 웅 하고 돌고, 주전자에 물이 차는 소리가 싱크대 아래에서 맑게 울렸다. 소선은 서현 방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문틈으로 방 안의 공기가 거실로 조금씩 흘러나오게 두었다. 문을 닫는 동작은 아직 조심스러웠다. 닫히는 소리가 아닌, 닫혔다는 상태가 다시 철문처럼 굳어질까 봐.


서현은 늦게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앉지 못하고 베개에 뺨을 반쯤 묻은 채, 손등으로 이마를 더듬었다. 이마에 남아 있는 미열이 손등의 뼈에 닿아 잠깐 반짝이는 듯했다. 소선은 “물 마실래?” 하고 묻고, 대답이 오기 전 물컵을 먼저 가져왔다.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컵을 골랐다. 차가운 유리의 온도가 손바닥에 붙었다. 컵을 건네는 손이 흔들리지 않게, 손목을 고정했다.


점심 무렵, 서현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어제처럼 몸을 둥글게 말지 않았다. 대신 등을 끝까지 기대지 않은 채, 무릎을 세우고 담요를 반쯤 덮었다. TV는 켜지지 않았다. 화면이 꺼진 검은 면에 창문이 비쳤고, 낮빛은 커튼 사이로 들어와 바닥에 얇은 선을 만들었다. 그 선 위로 먼지가 떠다녔다. 소선은 그 선을 밟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조심히 걸었다. 걸음이 조심스러우면 말도 조심스러워질 것 같았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소선은 거실 테이블 위를 비웠다. 서현이 펼쳐두던 공바카라과 펜을 한쪽으로 옮기고, 티슈 상자의 모서리를 테이블 선과 맞췄다. 정돈이 끝나자, 빈 자리가 오히려 크게 보였다. 그는 찻잔 두 개를 꺼냈다. 같은 크기, 같은 무늬. 손잡이를 잡는 순간 도자기의 미지근함이 손끝에 닿았다.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부을 때 김이 피어올랐다. 김이 천장으로 곧게 솟다가 거실 공기에서 풀어졌다. 차 향이 희미하게 퍼지며, 어젯밤 젖은 수건 냄새를 덮었다.


의자는 두 개를 마주 보게 놓았다. 나란히 앉는 자리가 더 편했는데, 오늘은 일부러 마주 보게 했다. 소선은 자신의 의자를 아주 조금만 당겨, 무릎이 서현 쪽을 향하게 만들었다. 발끝의 방향까지도 바꾸자, 등 뒤가 괜히 허전해졌다. 그 허전함을 견디기 위해 찻잔을 한 번 더 만졌다. 따뜻함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서현은 천천히 걸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에 앉는 동작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다. 무릎이 테이블 아래에서 한 번 흔들렸고, 손가락이 찻잔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소선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을 바라봤다. 김이 올라오고 흩어지는 속도, 잔 가장자리의 미세한 물기, 손잡이에 남는 체온. 그 작은 것들을 천천히 따라가며, 말을 앞질러 보내지 않으려 애썼다.


거실의 정적은 비어 있지 않았다. 주전자 바닥에서 남는 열이 ‘딱’ 하고 식으며 작은 소리를 냈고, 벽시계 초침이 규칙을 지켰다. 창밖에서는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소선은 그 소리들 사이에 자신의 숨을 끼워 넣었다. 숨이 짧아지려 할 때, 찻잔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온기가 호흡을 조금 늦췄다.


서현이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술이 잔 가장자리에 닿는 순간, 뜨거움에 아주 미세하게 얼굴이 찡그려졌다가 풀렸다. 그 표정 변화가 작아서, 소선은 더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았다. 서현은 찻잔을 내려놓고 손가락 끝으로 잔받침 가장자리를 문질렀다. 도자기의 미끄러운 표면에서 손끝이 헛돌다가, 다시 멈췄다.


소선은 목에 걸리던 질문을 꺼내지 않았다. ‘오늘 열은 어땠어’ 같은 문장도, ‘약은 먹었어’ 같은 문장도 아니었다. 그런 문장들은 관리의 언어였다. 관리가 필요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서현의 눈앞에 또 다른 표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한 모금 마셨다. 차는 따뜻했고, 혀끝에 쓴맛이 아주 얇게 남았다. 그 쓴맛이 목으로 내려갈 때, 어제 서현이 울던 숨이 잠깐 겹쳤다. 소선은 그 겹침을 밀어내지 않고, 손끝으로 잔을 더 단단히 받쳤다.


“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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