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때의 내가 필요했다

by소선
15화. 오늘도, 그때의 내가 필요했다.png




손바닥에 남은 미지근한 플라스틱 감각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렸는데도, 손가락 끝은 여전히 둥근 형태를 쥐고 있는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복도 조명은 거실보다 어두웠고, 벽시계 초침 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렸다. ‘착, 착.’ 소리가 벽을 타고 와 발목 근처에서 한 번 튕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현 방문은 닫힌 채로 평평했다. 방 안에서는 움직이는 소리가 없었다. 그 무음이 단단한 판처럼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소선은 발끝을 뒤로 빼지 않았다. 대신 손을 천천히 떼어, 옆 벽에 손바닥을 붙였다. 벽지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온도로 손금을 받아냈다. 손바닥이 벽에 붙어 있는 동안, 호흡은 조금씩 길어졌다. 길어진 숨이 목 안쪽의 거친 마찰을 건드리며 지나갔고, 그 마찰이 다시 어딘가로 이어지기 전에 소선은 방향을 바꿔 걸었다. 도망치듯 빠르지 않게. 다만 발바닥에 힘을 고르게 나누며, 소리가 일정하게 나도록 걸음을 맞췄다.


서재 문을 열자 공기가 달랐다. 거실의 음식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공기와 달리, 서재는 종이와 먼지, 오래된 나무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조명은 바카라상 위 스탠드 하나만 켰다. 노란 빛이 바카라상 한가운데를 동그랗게 적시고, 그 밖의 공간은 어둠 쪽으로 자연스럽게 밀렸다. 바카라장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선명하지 않았다. 어깨와 목의 선이 부드럽게 흐려져, 어떤 표정도 확실히 읽히지 않는 얼굴로 보였다.


바카라상 위에는 노트북이 덮인 채로 놓여 있었다. 소선은 뚜껑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대신 꺼진 검은 화면에 시선을 붙였다. 그 검은 면 위로 스탠드 빛이 반사되어, 얼굴 일부만 어렴풋하게 비쳤다. 눈 아래 그늘, 뺨의 붉은 기, 입술의 건조함. 방금 전 식탁의 금속음이 아직 귀 안쪽에서 울리고 있는 것처럼, 얼굴이 그 소리를 품고 있었다.


서랍을 열었다. 레일이 움직이며 낮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메모지 묶음이 한쪽에 있었고, 볼펜들이 고무줄에 묶여 굴러다녔다. 소선은 흰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종이가 손끝에서 미세하게 거칠었다. 손가락 끝으로 종이 가장자리를 한 번 문지르자, 얇은 섬유가 피부를 스쳤다. 그 감각이 이상하게 안정적으로 다가왔다. 말은 입에서 자꾸 모양을 잃었는데, 종이는 손안에서 모양을 유지했다.


펜을 쥐는 손이 떨렸다. 아주 크게는 아니었다. 펜촉이 공중에서 종이 위를 찾아갈 때, 손목의 미세한 흔들림이 빛에 드러나는 정도였다. 소선은 펜촉을 종이 위에 대지 못한 채, 몇 번이고 위치만 옮겼다. 대면 소리가 날까 봐, 혹은 찍힌 자국이 돌이킬 수 없을까 봐. 펜촉의 금속이 스탠드 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차가운 빛이 손끝을 더 긴장시키자, 소선은 펜을 잠시 내려놓고 손바닥을 편 채 바카라상 모서리에 얹었다. 모서리의 각이 손바닥 아래 살을 눌렀다. 그 눌림이 지금의 몸을 여기 붙잡아두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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