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평범하게 흘렀다. 부엌 쪽에서 밥솥 김이 빠지는 소리가 났고, 국을 데우는 냄비 뚜껑이 가볍게 떨렸다. 거실은 조명 하나만 켜져 있어 모서리들이 둥글게 무뎌져 보였다. 서현은 바카라상 대신 거실 테이블에 공바카라을 펼쳐 두고, 휴대폰을 스피커에 연결해 작은 피아노 곡을 틀어놓았다. 수행평가에 넣을 배경음이라며, 음량을 한 칸씩 올렸다 내렸다 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쓸 때마다 짧은 터치음이 나고, 그 위로 피아노의 얇은 선율이 깔렸다.
소선은 소파 끝에 앉아 찻잔을 받쳤다.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잔 위로 하얀 김이 한 줄기씩 올라왔다. 김은 천장으로 곧게 솟다가, 거실의 미지근한 공기에서 풀어져 느리게 흩어졌다. 잔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자, 도자기 표면이 뜨거워지기 전의 미세한 온기를 먼저 전했다. 손끝이 그 온기를 받아들이는 동안, 피아노 음 하나가 유난히 길게 남았다.
평소 같으면 배경으로 지나갔을 선율이었다. 이번에는 음이 공기를 긁고 지나가는 느낌이 남았다. 거실의 벽면을 타고 돌아오는 반사음이 명치 근처를 가볍게 두드렸다. 소선은 자세를 바로 고치려다 그대로 멈췄다. 등받이에 기대지 못한 채, 허리만 조금 굽힌 모양이 됐다. 숨이 얇아졌고, 얇아진 숨이 목 안쪽에서 마른소리를 냈다. 침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목끝에서 한 번 걸렸다가 내려가는 감각이, 오히려 더 또렷했다.
서현이 “이 부분이 좀 좋지?” 하고 말하며 중간 구간을 다시 재생했다. 피아노는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반복되는 음이 손가락을 건드리듯 귓속을 건드렸다. 소선은 찻잔을 들고 입술을 잔 가장자리에 댔다.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손에 든 잔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은 손목에서 시작해 손가락 끝으로 갔고, 찻잔 속 수면이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둥근 물결이 안쪽 벽을 한 번 치고 돌아왔다. 뜨거운 김이 그 위에서 잠깐 흔들렸다.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받침과 잔이 맞부딪히며 ‘톡’ 하고 소리가 났다. 소리는 작았는데 거실에서 과장되게 울렸다. 코끝이 갑자기 찡해졌다. 감기 기운도 없는데, 코 점막이 안쪽에서 당겨지는 느낌이 났다. 눈앞이 아주 잠깐 흐려졌다가, 다시 맑아졌다. 소선은 손등으로 코 밑을 한 번 훑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그 동작이 습관처럼 나왔다.
서현은 화면을 내려다본 채로 곡의 길이를 확인하고 있었다. 음악은 계속 이어졌고, 말소리는 줄었다. 그 조용함이 더 선명하게 들렸다. 소선은 테이블 위 찻잔을 한 번 더 바라봤다. 김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김이 오르는 만큼 잔 속은 조금씩 식고 있었다. 뜨거움과 식어감이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손가락 마디가 스스로 굽혀졌다. 펼치려면 펼 수 있는데, 굳이 펴지지 않는 방향으로 힘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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