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자라는 게 아니더라

by소선
11화. 어른이 된다는 건 자라는 게 아니더라.png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당겼다. 매듭이 올라가며 목젖 아래 살이 눌렸다. 숨이 얇아지는 쪽으로 천이 먼저 길을 냈고, 소선은 그 길을 따라 고개를 조금만 세웠다. 셔츠 단추를 끝까지 잠그는 손가락이 둔하게 굽혔다 펴졌다. 손톱 끝에 남은 어제 밤 편의점 캔커피의 금속 온기가, 이상하게도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따뜻함은 짧았고, 남는 건 얇은 막 같은 기억뿐이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을 때, 뒤축이 바닥을 한 번 긁었다. 검은 가죽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도, 닳은 모서리는 숨기지 못했다. 발을 넣고, 끈을 조여 묶고, 다시 일어섰다. 발목이 조금 늦게 따라왔다. 문고리를 잡는 손바닥에 차가움이 붙었다 떨어졌다. 공동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 벽면 거울이 곧바로 등을 밀어붙였다. 넥타이의 선, 어깨의 각, 눈 밑의 그늘. 정돈된 표정이 유리 위에 고정된 채 같이 내려갔다. 층수 안내음이 맑게 튀었고, 그 음과 음 사이가 지나치게 깨끗했다.


회사 건물 앞 바람은 도로의 먼지를 얇게 훑었다.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는 카드 소리, 로비의 발소리, 커피머신이 토해내는 김. 모든 소리가 규칙을 갖고 있었다. 소선은 그 규칙 속에 발을 맞춰 넣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손등으로 넥타이 매듭을 한번 눌러 확인했다. 너무 조여졌다 싶어도, 그대로 두었다. 느슨해지면 하루가 풀어져버릴 것 같았다.


회의실 문을 열자 냉기가 먼저 얼굴을 쓸었다. 통유리 너머로 오전빛이 직선으로 들어와 테이블 끝을 날카롭게 자르고 있었다. 앉은 사람들의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고, 노트북 화면에는 숫자와 그래프가 줄을 맞춰 서 있었다. “결정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누군가 말했고, 여러 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선에게 모였다. 몸은 의자 등받이에 붙은 채였는데, 목만 앞쪽으로 조금 나갔다. 넥타이의 압박이 더 선명해졌다. 입술이 마르자 혀끝으로 한 번 훑었고, 그 짧은 움직임에도 회의실 공기가 밀도를 얻었다.


서류의 모서리를 맞추며 시간을 벌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숫자는 논리적으로 연결돼 있었고, 리스크는 표로 정리돼 있었고, 결론은 몇 개의 선택지로 줄어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줄이 손끝에서 멈췄다. ‘지금 이걸 고르면, 누군가는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 그 바카라임의 이름이, 오늘은 자기 이름으로 바로 이어져 있었다. 소선은 펜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펜끝이 탁 하고 테이블에 닿으며 작은 울림이 생겼다. 누군가 기침을 삼켰고, 유리창 너머 복도에서 지나가는 카트 바퀴 소리가 멀어졌다.


“이 방향으로 가죠.” 말을 내뱉으며 턱이 아주 조금 떨렸다. 떨림은 목 안쪽으로 숨겨졌고, 외부에는 단단한 문장만 남았다.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이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며 조명이 바뀌었다. 다시 흐름이 생겼다. 소선의 손은 테이블 아래에서 넥타이를 한 번 만졌다. 매듭이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 단단함이 안심을 주기보다는, 목을 더 조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소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음에 남은 말을 꺼내어 글과 노래로 남깁니다.

2,05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0화그 골목엔 네 발자국이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