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의 불을 모두 끈 뒤에도 눈은 쉽게 어둠에 익지 않았다. TV 화면이 꺼진 자리에 검은 사각형이 남았고, 창밖 가로등 불빛이 커튼을 비스듬히 밀어 올려 벽 한쪽에 옅은 띠를 만들었다. 소선은 리모컨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손가락 끝으로 버튼의 오목한 면을 한 번 더 눌러 보았다. 아무 반응 없는 플라스틱의 감촉만 남았다. 그는 그 감촉을 확인하듯 손을 천천히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싱크대에 물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울렸다. 유리 바닥이 스테인리스 상판을 건드리며 ‘딱’ 하고 튀었다. 소선은 컵을 다시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수건 위에 내려놓았다. 젖은 수건이 유리를 받아주며 낮은 마찰음을 냈다. 손바닥에는 아직 미지근한 물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두 손바닥을 서로 비볐다.
소선은 수도꼭지를 한 번 더 잠갔다. 금속이 맞물리는 감각이 손끝에 남았다. 물방울이 배수구 쪽으로 떨어지며 ‘톡’ 하고 튀는 소리가 두세 번 이어졌다. 그 소리가 사라지자 자신의 호흡이 더 크게 들렸다. 숨을 들이마실 때 옷깃이 목에 스치고, 내쉴 때는 가슴팍의 천이 아주 조금 들썩였다. 그는 숨을 얕게 쉬려 입술을 다물었지만, 그럴수록 목 안쪽이 더 건조해졌다. 주방등을 끄자 냉장고 문에 붙은 자석들의 윤곽만 희미하게 남았고, 어둠 속에서 손잡이의 곡선이 떠올랐다. 소선은 손을 들어 그 손잡이를 잡으려다 다시 내렸다. 지금 열어야 할 것은 냉장고가 아니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피부가 건조해지며 미세한 열이 올라왔고, 그 열은 곧 차가운 실내 공기에 빼앗겼다. 냉장고 모터가 한 번 길게 웅웅거렸다. 소리가 멎자 집 안의 다른 소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벽시계 초침이 공기를 가르며 규칙을 만들었다. 착, 착. 바늘 끝이 같은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소선의 목덜미가 미세하게 긴장했다가 풀렸다. 창틀 쪽에서 바람이 아주 약하게 스며들어 커튼이 한 번 들썩였고, 천이 벽을 스치는 소리가 얇게 지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낮에 보았던 자국들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서현의 바카라상에 두고 나왔던 접힌 시험지, 지우개 가루의 감촉, 종이 결이 일어나던 순간이 손끝에 달라붙어 있었다. 소선은 테이블 모서리를 따라 손가락을 밀었다. 니스칠한 나무의 매끈함이 손톱 아래로 미끄러지다가, 모서리에서 살짝 꺾이는 지점에서 손이 멈췄다. 그 자리에서 복도 쪽을 바라보니 어둠은 한 겹 더 두꺼워져 있었다. 서현의 방문은 복도 끝에 붙어 있었다. 낮에는 그저 문짝이었는데, 지금은 복도를 가로막는 단단한 벽처럼 서 있었다.
그는 한 걸음을 떼려다 멈췄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면적을 줄이려는 듯 발끝부터 조용히 내디뎠다. 걸음이 길어지지 않게 무릎을 조금 굽혔고, 체중이 발뒤꿈치로 실릴 때 바닥이 아주 낮게 울었다. 소선은 그 울림이 문 너머까지 전달될까 싶어 발을 다시 들어 올려 다른 각도로 내렸다. 마룻바닥의 결이 발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먼지가 쌓이지 않은 자리의 매끈함과, 자주 밟지 않아 살짝 거친 자리의 차이가 발바닥에 걸렸다.
복도 벽지의 무늬가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드러났다. 문틈 아래로는 희미한 빛이 한 줄 새어 나와 바닥에 납작한 칼날처럼 놓여 있었다. 그 빛은 움직이지 않았고, 고정된 선이 안쪽의 존재를 더 분명히 알렸다. 소선은 그 선 끝에 시선을 걸어두고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에는 실내 먼지 냄새와 세탁한 옷에서 남은 세제 향이 섞여 있었다. 그 냄새 사이로 서현의 방에서만 나는 듯한, 연필 가루 같은 건조한 향이 희미하게 따라왔다. 소선은 손가락을 펴서 자신의 손톱을 한 번 확인했다. 낮에 지우개 가루가 끼었던 자리에 아직 희끗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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