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선물한 하루

2026년 7월 11일

by신미영 sopia

날씨가 무척 더웠다. 집에만 있기엔 답답했고, 그렇다고 멀리 떠나기에도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내가 당신을 위해 시간을 쓸게."
그 한마디가 하루를 설레게 했다. 쉬는 주말에 서로 바빠 미뤄졌던 상당산성 주꾸미집으로 향했다. 나도 좋아하지만 특히 남편이 즐겨 찾는 곳이다. 가격은 부담 없고 맛은 늘 만족스러워 가끔 생각나는 식당이다.

산성 주꾸미 맛집

주꾸미볶음이 나오기 전 열무김치와 콩나물, 생채나물, 따뜻한 미역국이 먼저 차려졌다. 매콤한 주꾸미를 비벼 먹다가 미역국 한 숟갈을 떠먹으면 입안이 부드럽게 정리된다. 담백한 맛이 좋아 우리는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익숙한 음식이지만 함께 먹는 사람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뒤 남편은 친구에게 추천받은 카페가 있다며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대청댐 방향으로 차를 달리자 창밖은 온통 짙은 초록이었다. 산길은 점점 좁아지고 계곡물이 길을 따라 흐르는 풍경이 이어졌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카페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곳곳에 놓인 인형들은 주인이 예전에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며 모아 둔 것들이라고 했다.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어 카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은운리 카페

드립커피와 시원한 과일주스를 마신 뒤 카페 뒤편 전망대로 올랐다. 바위길을 따라 천천히 걷자 멀리 산과 계곡, 우리가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장환 문학관

다음으로 들른 곳은 오장환 문학관이었다. 오래전 시 동호회에서 다녀왔던 곳이지만 다시 찾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오장환 시인은 서정성과 현실 의식을 함께 품었던 시인이었지만 월북 이후 오랫동안 작품이 금지되었다. 지금은 그의 문학 세계가 다시 평가받고 있다는 설명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삶과 문학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청주로 돌아와서는 설빙에서 인절미 팥빙수를 먹었다. 시원한 얼음과 달콤한 팥을 맛보니 아이들이 어릴 적 방학마다 집에서 빙수를 만들어 주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니 추억도 조금씩 맛을 더해 가는 것 같다.

동남지구 설빙

잠시 집에서 쉬었다가 저녁에는 남편이 자주 간다는 참치집으로 향했다. 죽과 국, 샐러드, 참치회와 여러 음식이 차례로 나왔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음식보다 더 큰 행복이었다. 오늘 하루는 특별한 여행이 아니었다. 멀리 떠난 것도 아니고 값비싼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온전히 내게 내어주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될 하루가 되었다.

참치마트 맛집

가끔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금슬이 좋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도 다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 오히려 부딪힐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오래 묵혀 두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웃으며 다시 풀어 간다. 결혼 후 지금까지 우리는 한방에서,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함께 잠드는 시간이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고, 화해하게 만들고,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부부의 행복은 거창한 이벤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맛있는 한 끼를 함께 먹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걸으며 하루를 나누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날 남편이 내게 선물한 것은 비싼 하루가 아니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내어 준 시간이었고, 변함없이 곁을 지켜 주는 사랑이었다.

" 오늘 당신은 내게 시간과 마음을 몽땅 선물했네~ 고맙고 사랑해"